세상 이야기

스마일 우체국-8

투광등 2019. 4. 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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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하늘이 파랗다. 밤새 비가 그쳐 하늘이 맑아진 것이다. 등산용 가방을 메고 스마일 우체국으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게 문을 열자 맞은편 안쪽에 자리잡은 주방이 반겨준다. 입구 오른쪽 벽에 커다랗게 그려놓은 우편엽서는 새로운 사연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사연을 적어서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 궁금해 하는 듯 하다. 그 옆에는 전설의 동물을 형상화한 봉제인형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언젠가 새로운 주인을 찾아 갈 것이다. 왼쪽벽에는 하얀 백지처럼 상상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손님을 맞게 될 몇 개의 테이블 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동화가 그려져 있다. 조 감독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직접 그린 그림이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철제 우편통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벽면에 그려놓은 우편엽서와 함께 스마일 우체국의 상징물이다. 가게를 정식으로 오픈하게 되면, 저 우체통을 가게 입구에 내놓을 계획이다. 손님들이 우편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다음날 아침 우체국으로 전달해 줄 생각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스마일 우체국의 부가서비스가 될 것이다. 


머지 않아 스마일 우체국은 동네에서 명소가 될 것이다. 1년 쯤 지나면 전국에서 생전에 꼭 한번이라도 찾아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에는 문화 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만들고 싶다. 세계적인 명품 가게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조 감독은 혼자말로 창업 목표를 재확인 했다. 매일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반복하는 내용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꿈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무력감이 생길 때도 있었다. 어느날 문득 의지가 약해질 때는 어김없이 사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사업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이 주변을 맴돌았다.  


“아자~, 아자~. 힘을 내자!”

조 감독은 힘을 내자며 양팔을 들어 주먹을 힘껏 쥐었다. 어깨 위로 힘이 불끈 솟았다. 하루 속히 스마일 우체국의 커피 맛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커피 머신과 씨름하는 수밖에 없다. 


정오 무렵.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가 온 것 같았다. 어제 아줌마가 친구들과 같이 왔나 하고 생각했다. 잠시 후, 가게 문이 열렸다. 앳된 얼굴의 남자였다. 검정색 티에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차림으로 볼 때 대학생 같았다.


“여기는 무슨 가게 인가요?” 남자가 물었다.

“혹시 학생이요?” 조 감독은 무슨 가게냐고 묻는 청년의 질문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가게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면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혼자서 매일 오픈 준비만 하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자신이 독창성을 가미하여 만들고 있는 커피 맛에 대해 20대의 평가도 받고 싶었다.

“네, 저기 앞에 철도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청년이 말을 하면서 문을 좀 열자 옆에 한 사람이 더 보였다.

“아, 철도대학교요? 들어오세요.” 조 감독이 반가운 표정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남학생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여학생이 따라 들어왔다.

두 학생은 가게 안에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에 묘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실내 인테리어가 특이하고 약간은 의외이며, 재미있다는 뜻 같았다.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장님, 여기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아, 그럼요. 친구들한테 많이 알려주세요.”

조 감독이 바라던 바였다. 방문해 주는 사람들이 스마일 우체국을 많이 홍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내가 커피를 공짜로 드릴 테니까 앉아서 기다리세요.”

신이 난 조 감독은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내렸다. 0.01g까지 눈금을 재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시간이 지체되어도 커피 맛은 과학이라며, 모든 과정은 수치에 따라 정확하게 표준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조 감독의 온 몸에 자리잡고 있었다. 학창 시절엔 수학이 영어와 함께 기피 과목 중 하나였다. 나이 들어서 숫자에 집착하는 자신이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 감독은 커피를 2잔 내려서 학생들 앞에 내놨다.

남학생이 먼저 입맛을 봤다. 

조 감독은 남학생의 평가가 궁금했다. “맛이 어떠세요?”

“학교 앞에 잘 가는 데가 있는 데 거기보다 맛이 진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물을 많이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는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아주 큰 컵에 1,500원 합니다.” 남학생이 대답했다. 그리고선 같이 온 여학생을 돌아보며 “그렇지?” 하고 물었다. 

여학생은 “맞어, 1,500원이야” 하고 맞장구를 쳤다.

“사장님 커피가 거기보다 맛의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여학생은 조 감독을 향해 공짜 커피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좀 멀지만, 우리 가게에도 자주 와 주세요.” 조 감독은 웃으면서 학생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장님 가게는 언제 오픈하세요. 우리가 홍보해 드릴게요.” 남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여학생도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조 감독을 바라보았다.

“올 연말 가기 전에 12월엔 오픈 할 것입니다.”

“아직, 5개월이나 남았는데요?”

“그 전에 오픈할 수도 있습니다.”

“사장님, 오픈하시면 꼭 올게요.” 여학생이 장담하듯이 말했다. 

커피를 다 마신 학생들이 일어섰다. 

“오늘 잘 마시고 갑니다.” 

“사장님 대박 나세요!”


학생들이 떠나자, 조 감독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어떻게 1,500원짜리 커피를 팔지? 나는 아무리 해봐도 한잔에 2,500원 이상 받아야 샘샘인데....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최소 3,000원을 받아야 되는데.... 얼마나 싸구려 원두를 사오길래 그렇게 싸게 파는 거야?

조 감독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잔에 1,500원과 3,000원의 차이는 분명히 원두 가격에서 나올 거야. 내 고객은 비싸게 받더라도 좋은 원두를 제공해야 돼. 이것은 불변의 원칙이야. 

조 감독은 한번씩 흔들리는 자신의 신념을 재차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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