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마일 우체국-9

투광등 2019. 4. 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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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다. 

조 감독은 문밖에는 관심없는 듯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다 말고 출입문의 반대쪽으로 난 주방의 창문 밖을 내다봤다. 


연립주택이 양 옆에 서있다. 그 사이로 은행나무가 줄지어 죽죽 뻗어있다. 은행잎이 햇살을 받아 연초록색을 띠며 생기가 넘친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분쇄기의 깔대기를 빼내 남아있는 원두 가루 찌꺼기를 칫솔로 털어냈다. 원두를 분쇄할 때마다 조금씩 깔대기에 남는 가루를 재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분쇄한 원두 가루를 사용해야 신선도와 향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은 고객을 위한 신뢰이고 믿음이다. 조 감독은 스마일 우체국에서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행복, 품격을 서비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가게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낯익은 얼굴이었다. 며칠 전 들렀던 금색 머리를 한 아줌마였다.

“아-, 안녕하세요.” 조 감독이 주방에서 머리를 돌려 인사를 했다.

“오늘 친구들이 한차 왔어요.” 

아주머니는 문밖으로 고개를 돌려 “뭐해. 빨리 안들어오고? 빨리 들어와!” 하고 말했다. 갑자기 아줌마들이 와르르 문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십시오.” 조 감독이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인사를 했다.

“와~.” 가게 안으로 들어선 아줌마들이 탄성을 지르며 실내를 둘러봤다. 

“야-, 사진보다 낫다.” 노랑색 물방울이 찍힌 스카프를 두른 아줌마가 말했다. 

“동화에 나오는 찻집같애.” 뉴욕 양키즈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쓴 아줌마가 거들었다. 

“저기 캐릭터 예쁘다.” 검정색 스니키즈 운동복 바지에 빨강색 운동화를 신은 아줌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님이 감성이 풍부하신가 봐-.” 몸집이 약간 있는듯한 아줌마가 낮은 목소리로 조 감독에게 눈길을 주었다.

가게는 아줌마들로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이들은 선 채로 좌우, 전후, 천정으로 눈동자를 돌리기에 바빴다. 스니키즈 운동복 차림의 아줌마는 핸드폰을 들고 구석구석 사진 찍는 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 앉으시지요. 뭘로 드실래요?” 조 감독은 금발의 아주머니에게 주문할 메뉴를 물어봤다. 아주머니들이 차례로 금발 아주머니 옆과 앞쪽에 의자를 당겨서 앉았다.

“메뉴판이 어디 있지요?” 금발 아주머니가 테이블 주변과 벽면을 둘러보며 메뉴판을 찾았다. 

조 감독은 뒷덜미에 손을 얹고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메뉴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떤 메뉴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아메리카노 하고....” 조 감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당장 준비할 수 있는 메뉴는 아메리카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아메리카노로 해주세요.” 금발 아주머니가 결정을 내렸다. 

“지난 번 아메리카노 꽤 괜찮았거든요. 그 때처럼 해주세요.” 금발 아주머니는 아메리카노가 좋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해주었다. 

“나도 아메리카노 먹어볼래!”

“나도.”

“한잔 더.” 

가게에 들어온 아주머니 5명 중 4명이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나머지 몸집이 있는 아주머니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잔다며 녹차를 주문했다.

가게에 녹차는 없었다. 차 종류는 집에서 가져온 홍차 몇 봉지가 전부였다.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갈증이 날 때 타 먹으려고 갖다 놓은 것이다. 

“혹시 녹차 대신에 홍차는 안될까요?” 조 감독이 녹차를 주문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네, 홍차도 좋아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메뉴를 바꾸어 주었다. 만일 메뉴를 계속 고집하였다면, 100m 쯤 떨어진 시장에 가서 사왔어야 할 판이었다. 조 감독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머니들은 가격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동네 주변의 커피점들이 아메리카노 한잔에 2,500원에서 3,500원 정도 하니까 그 정도로 생각하는지 가격에 신경써지 않았다.

조 감독이 아메리카노아 홍차를 준비하는 동안 아줌마들은 아파트 관리비와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금발의 아주머니가 아파트 부녀회 회원들을 소집해서 온 듯 했다.


조 감독이 커피를 갖다주자, 노랑색 물방울 스카프를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사장님, 저기 동물 인형이 특이하고 예쁜데 얼마에요?” 

“앞으로 2만원에 팔려고 합니다.”

“지금은 안파세요?”

“예. 지금은 안팝니다.”

“왜요?”

“정확한 가격을 아직 안정했거든요.”

“그럼, 2만5천원에 파시면 안돼요?”

“가게를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아서 팔지 않습니다.”

“그럼, 3만원은 어떠세요?”

“저는 안판다면 안팝니다. 죄송합니다.” 조 감독은 정말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금발의 아주머니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사장님이 지금 안파신다니까 다음에 와서 사가지? 그런데 사장님, 저 인형은 무슨 동물인가요? 소같기도 한데요.”

“에~.. 그게 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런데 소는 아닙니다.”

“소가 아니면 염소 아닌가요?”“아닙니다.”

“소도 아니고 염소도 아니면 코뿔소인가요?” 스니키즈 운동복 아줌마가 웃ㄹ으면서 끼어들었다.

“’소’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아닙니다.” 조 감독은 ‘소’라는 단어가 싫었다. 신비감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뭐죠?” 하고 몸집이 있는 아줌마가 물었다.

“제가 상상해서 만든 동물입니다. 상상의 나라에 사는 전설의 동물이라고 할까요.”

“사장님, 재미있는데 좀 어렵습니다.” 노랑색 물방울 스카프의 아줌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가끔 상상을 하다보면 엉뚱한 일도 생기고, 세상에 살고 있는 동물과 비슷한 동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 인형은 세상에 없는 동물입니다.” 조 감독은 신비로움을 강조하고 싶어서 상상의 동물임을 거듭 강조했다.


음료를 다 마시자 모두 일어섰다. 금발 아주머니의 안내로 특별히 견학을 나온 듯 했다.

금발 아주머지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여기 전부 얼마죠? 계산해주세요.” 

주방에 들어갔던 조 감독이 테이블 쪽으로 나오며 금발 아주머니에게 웃음의 눈길을 보냈다.

“오늘 커피는 공짜로 드립니다.”

“네? 그래도 받으셔야죠!”

“아닙니다. 지난번 약속했잖습니까? 제가 공짜로 드린다고요. SNS로 많이 홍보해주시면 됩니다.”

“커피도 마시고, 실내 그림도 좋고, 사장님 통도 크시고..” 금발 아주머니가 멋 적은 듯이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커피값 안받습니다.” 

조 감독은 머뭇거리는 아주머니들을 향해 괜찮다며 거듭 손사래를 쳤다.


아주머니들은 미안했는지 칭찬과 희망의 멘트를 날려주었다. 

“오늘 커피 맛 맛있었습니다.” 모자를 쓴 아줌마가 말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스니키즈 운동복 아줌마가 웃었다.

“다음에 오면 꼭 두배로 낼게요.” 금발 아줌마가 말했다.

조 감독은 가게문 밖으로 나와 환송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들은 흰색 봉고차에 올라탔다. 이웃 동네에서 스마일 우체국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차를 타고 온 것이다. 

차가 떠나자 조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저 분들을 단골 고객으로 모시면 스마일 우체국을 알리는 SNS 홍보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대단한 아주머니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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