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마일 우체국-6

투광등 2019. 4. 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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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커피 체인점 본사에서 도자기 전문회사 몇 곳을 추천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조 감독은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역 앞에서 공방 아줌마를 만나 심리적으로 당황한데다가 블루커피 체인점에서 추천받은 도자기 디자인도 마음에 썩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철 한 쪽 모퉁이에 자리가 나서 앉아 있으니 지하철 역 앞에서 아줌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가게 오픈하셨어요?’ 이 말이 기억되면서 그 아줌마가 한달 전 가게에 들러서 ‘가게 오픈하셨어요’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또 찾아오겠다고 한 말도 귓가에 맴돌았다. 아~. 내 가게와 그 아줌마는 어떤 인연이길래 나를 괴롭히나. 에이, 그래도 파란색 공방의 도자기로는 안돼지. 


그새 깜빡 졸았던 것 같았다. 눈을 눈을 떠보니 하얀 살갗이 보이고 배꼽 같은 것이 보였다. 고개를 약간 좌우로 흔들면서 눈을 깜빡깜빡했다. 피곤해서 정신이 덜 깬 듯했다. 누가 내 앞에서 배꼽을 드러내놓고 있나? 눈을 감았다. 속으로 ‘저 살과 배꼽은 도대체 뭐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궁금하다. 어떤 여자가 전철에서 배꼽을 드러내놓고 있는 걸까. 정신을 차리고 게슴츠레하게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여전히 눈 앞에 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전철이 정차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듯했다. 전철이 움직인다. 눈을 슬쩍 떴다. 여전히 서 있다. 어떤 여자길래 남자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배꼽을 내놓고 있단 말인가. 마침 두 정거장밖에 남지 않아서 잠시 후엔 일어서야 할 시간이 됐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젊은이든, 중년 아줌마든, 아저씨든 십중 팔구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앞에 서있는 여자에게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조 감독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계속 볼 수도 없고, 잠자는 척도 할 수 없어 난감했다.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곤란해졌다.


어찌할지를 몰라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여자의 샌들이 보였다. 샌달 사이로 삐져나온 오른쪽 발가락에 빨강 매니큐가 보였다. 왼쪽 발가락은 검정색이었다. 통통한 장단지 살이 보였다. 무릎 위로는 실밥이 터진 청바지가 보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터질 것 같았다. 청바지니까 괜찮을 것이다. 광산의 광부들이 즐겨 입었다던 단단한 옷이 청바지 아닌가. 요즘 유행이 반바지 스타일의 청바지여서 처음 보는 청바지는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매를 뽐내겠다는데, 시비 걸 이유가 없다.


허리춤에는 청바지를 조이는 혁대나 끈도 안보였다. 그냥 단추 하나로 잠겨 있었다. 또 배꼽이 보였다. 배꼽에는 희미하게 약간의 때같은 것이 보였다. 자다 일어나서 시력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위로 올려보니 스누피 캐릭터가 그려진 반팔 티가 보였다. 가슴 쪽으로 솟아오른 볼륨감이 상큼한 여름 과일을 연상케 했다. 참외, 토마토 같은 과일은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과일이다. 더 위로는 오른쪽 겨드랑이가 보일락말락했다. 오른 팔을 뻗어 손잡이를 잡고 있는 다소 두툼한 손이 보였다.


‘그렇구나. 손잡이를 잡기 위해 팔을 들고 있으니 반팔티가 위로 추켜 올라간 것이구나.’ 조 감독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금세 수정했다. 원래 배꼽이 드러나는 배꼽티를 입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바른생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오해했다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얼굴 쪽으로 시선이 갔다. 여성이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조 감독이 스마트폰 뒤에 가려진 여성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목을 약간 젖히는 순간, 여성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더니 조 감독을 내려봤다. 정전기가 흐르듯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조 감독은 멈칫멈칫 하다가 눈을 돌렸다. 여성의 눈빛이 레이저 광선처럼 빛났기 때문이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성이 옆으로 흘깃 살펴보는 눈치였다. 당당하게 쳐다볼 걸, 쭈빗쭈빗하면서 바라본 게 괜히 후회가 됐다.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그 여자도 내리는 듯 조 감독 바로 뒤에 비켜 서서 정차를 기다렸다.


전철이 서자마자 조 감독은 잰걸음으로 출구 쪽을 향해 걸었다. 

따라 내린 여성이 뒤에서 “이보세요!” 하고 불렀다. 

“왜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조 감독이 멈춰섰다. 

“잠시만요!” 좋은 말투가 아니어서 여자가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살짝 짜증이 났다. 

“제가 좀 바쁜데요.” 조 감독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여성은 핸드폰으로 “8번 출구 앞이어요” 하면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여기 이 사람이어요!” 

조 감독 쪽으로 다가온 검정색 옷을 입은 남녀 2명에게 여성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조 감독과 여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남녀 두 사람이 입은 검정색 유니폼에는 ‘지하철수사대’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배꼽을 드러냈던 여성은 지하철수대대 옷을 입은 남녀 2명에게 조 감독을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저를 비웃듯이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상당히 불쾌했어요.” 


지하철 수사대 소속의 여경이 조 감독의 얼굴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랑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네~?” 갑작스런 상황에 부닥친 조 감독은 제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선생님, 저희랑 같이 가주시죠.” 같이 온 지하철 수사대 남자 경찰이 강요하듯이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럼, 저는 가도 되는 건가요?”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맹랑한 아가씨가 물었다.

“네, 다른 상황이 없으면 가셔도 좋습니다.” 여경이 말했다. 

배꼽을 드러냈던 아가씨는 긴 줄이 달린 핸드백을 오른손으로 잡은채 플랫폼으로 다시 올라갔다. 조 감독을 지하철수사대에 넘기기 위해 일부러 같이 내렸던 것이다. 조 감독은 기막힌 상황에 혀를 찼다. 바른생활 하는 여성인 줄 알았더니 자신을 치한 취급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조금 전 성희롱하신 겁니다.” 남자 경찰이 심문조로 말했다. 지하철 역사의 한 켠에 있는 사무실로 불려온 조 감독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성희롱 범죄자로 낙인찍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는 성희롱 한 적이 없어요. 아까 아가씨와는 옷깃도 스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혹시 그 여성분을 바라보지 않았습니까?”

“그야, 봤지요. 얼굴 한번 본 것밖에 없어요.”

“선생님이 일부러 보신 거잖아요. 앉으신 자리에서 위로 치켜 올려봤다면서요. 눈빛이 음흉스러웠다고 그 아가씨가 전화로 알려주었어요.”

“내가 잠이 잠깐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아가씨가 앞에 서 있더라구요. 앞에서 보이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눈을 계속 감고 있으란 말인가요?”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는데, 여자를 훔쳐보시면 안됩니다. 그거 다 성 희롱죄에 걸립니다.”

“난 훔쳐본 것 없어요. 눈 앞에 있는데 눈을 감고 보지 말라는 거요? 남자의 눈 앞에 와서 배꼽 내놓고 서 있던 여자가 잘못 된 거 아니요?”

“선생님, 눈을 두 번 왔다갔다 하면 성희롱죄에 걸립니다. 혹시 2번 이상 왔다갔다 하지 않으셨나요?”

“딱 한번 얼굴이 마주쳤어요.” 이렇게 얘기하고도 조 감독은 가슴이 찔려왔다. 얼굴이야 한번 봤지만 배꼽을 본 횟수로 따지면 눈을 뜨자마자 본 것까지 모두 3번 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보인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조 감독이 잘못한 것 없다고 버티자 책임자인 듯한 경찰이 다가왔다. 

“선생님, 그동안 범죄 경력도 없으시고 한데 이번은 봐 드리겠습니다. 또 오시면 그 때는 성희롱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조 감독에게 훈시하듯 말을 던졌다. 

책임자의 말이 끝나자 취조하던 순경도 한마디 했다. 

“선생님, 앞으로 여성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만 가셔도 되겠습니다.”


조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 수사대의 사무실 문을 나서자 머리 끝으로 화가 서서히 밀려올라왔다.  

지하철 수사대! 이 자식들, 한번 보자구! 

멀쩡한 사람을 치한으로 취급하다니 여자 말만 듣고 말이야. 

눈 앞에 와서 보라는 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두 번 이상 쳐다보면 안된다고? 그럼, 눈 감고 다니라는 건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여자들 무서워서 지하철 타고 다니겠나. 차라리 남녀 독립칸을 만들어 놓든지. 원~, 재수 없어!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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