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마일 우체국-5

투광등 2019. 4. 11. 12:56
반응형
SMALL

조 감독은 스마일 우체국 안에서 핸드폰을 조작하면서 뭔가 골똘히 보고 있다.


도자기로 만든 컵 사진이다. 파란색 공방의 아주머니가 ‘카카오 스토리’에 작품이라며 올려놓은 사진이다. 도자기 컵 옆면에 빨강색 루즈색을 바른 듯한 하트 모양이 크게, 작게 배열되어 있고, 반짝거리는 별 모양도 노랑, 초록, 빨강 등으로 덮여 있었다. 조 감독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줌마가 올려놓은 사진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복잡하고 어지럽다는 인상이 들었다. 조 감독의 눈은 아주 실망한 눈치였다. 스마일 우체국을 찾는 손님들에게 내놓기에는 많이 부족한 도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자. 아줌마의 작품은 거의 장난질 수준이야! 이런 도자기 컵은 틀림없이 우리 가게의 품격을 떨어뜨릴 거야.’ 조 감독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평소 도자기는 이천이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거리상 너무 멀었다. 커피 원두와 커피 기계, 레시피를 제공해주기로 한 블루커피 체인점 본부를 찾아가기로 했다. 거기에 가면 도자기 컵을 잘 만드는 곳을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 몇몇 곳을 소개해줄 수 있다면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란 말도 덧붙여 해주었다.


조 감독은 주섬주섬 가게 안을 정리하고 외출할 때 사용하는 에코 가방을 멨다. 에코 가방에는 뿔이 4개 달린 전설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조 감독이 직접 가방에 그려넣은 것이다. 가방끈 한 쪽에는 열쇠고리가 달려 있는데, 거기에는 작은 봉제 인형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1,000만원을 들여서 3천개를 생산한 것이다. 이 봉제 인형도 뿔이 4개 달린 동물이다. 

조 감독이 7년 전에 삶의 희망을 잃고 있을 때, 낙서장에서 탄생한 상상의 동물이다. 조 감독이 스마일 우체국을 여는 것도 실제로는 커피를 파는 것보다 이 동물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훨씬 컸다.


가게를 나와 재래시장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왼편 길가에 그동안 시장조사 차원에서 여러 차례 들렀던 미니 커피점이 보였다. 대형 유리창 안으로 손님이 한명도 없다. 작은 동네에 커피점이 너무 많다. 조 감독이 또 커피점을 열면 정말 피티기는 전쟁이 될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새삼 다짐하는 동안 전철역이 가까워졌다. 역사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더기로 모여있다. 거치대에 세워진 홍보용 배너가 사람들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역 앞에 다다르자, 종이와 헝겊 등으로 만든 꽃작품이 보였다. 수를 놓은 수공예함도 보였다. 희끗희끗한 색깔이 비치는 도자기 작품도 눈에 띄였다. 옆 앞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세워 놓은 배너에 눈길이 갔다. ‘우리 동네 전통문화관광상품 판매전’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 아래에 시청 문화과, 공예조합 등의 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시청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화상품업체들의 상품 판촉전을 지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 감독은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는 터라 이런 행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어떤 물건들이 나와 있는지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물건을 죽 훑어봤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여러 종류의 상품 가운데 도자기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자기 컵을 주문하러 가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잘 하면 여기서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모양이 있는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궁금했다. 


잠시 시간을 내기로 하고 사람들 뒤에 서서 기다렸다. 앞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 도자기를 출품한 주인에게 최소 주문량과 가격대 등을 물어보려고 했다. 주인이 바쁘면 명함이라도 챙겨 갈 요량이었다. 몇 사람이 빠져 나가고 바로 앞에 할머니가 물건을 고르면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도자기를 파는 주인이 보였다. 파마 머리에 보라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개량 한복을 입어서인지 장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그릇 한 개를 가방에 넣고 돌아섰다. 조 감독은 할머니가 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안녕하세요!” 도자기 주인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 감독은 “네~”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 부딫혔다. 조 감독은 갑자기 몸이 굳어지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귓불까지 발갛게 달궈지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사를 나눈 도자기 주인은 바로 ‘파란색 공방’의 여사장이었다. 상대 아주머니도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스마일 우체국 사장을 여기서 조우하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아니, 스마일 우체국 사장님 아니세요?”

“아, 네?” 조 감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장님 가게 오픈 하셨어요?”

“아-... 아직 안했습니다.”

“그럼, 이 도자기 컵 어떠세요?” 

아주머니는 하트 모양이 여기 저기 찍혀있는 컵을 보여주었다. 조 감독이 사진으로 봤던 그 컵이었다. 사진으로 보다가 실물로 보니 더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다음에 볼게요!” 

조 감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뒤로 물러섰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한번 찾아뵐게요!” 아주머니는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조 감독은 당황한 나머지 뒤에 있던 사람의 가방에 걸려 몸이 휘청하면서 넘어질 뻔했다. 


행사장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조 감독은 어깨에서 흘러내리던 가방을 왼쪽 어깨로 옮겨서 바로 멨다. 얼굴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듯 눈이 바로 뜨이지 않았다. 너무 당황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게 살까. 저 아줌마처럼 체면 안차리고 사람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해! 아니야, 그렇게는 안할거야.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올라가면서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고는 한편으론 살짝 걱정이 됐다.   

‘아이구, 저 아줌마 넉살도 좋아. 다음에 또 내 가게에 찾아오겠다니.... 그릇이 내 맘에 들기만 하면 내가 이렇게 피해다니고 있을까. 부르는 값에 당장 사지. 스마일 우체국에 오는 고객에게는 품격있는 그릇으로 서비스를 해야 한다니까.’



- 계속 -

반응형
LIST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마일 우체국-7  (0) 2019.04.15
스마일 우체국-6  (0) 2019.04.12
스마일 우체국-4  (0) 2019.04.10
스마일 우체국-3  (0) 2019.04.09
스마일 우체국-2  (0) 201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