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조 감독은 한 걸음 물러섰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스마일 우체국의 유리창문에 눈을 갖다대고 안을 들여보다보는 사람들을 스스로 경멸하지 않았던가.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바로 자신이 싫어하던 그 모습 아니었던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갈등이 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돌아서야 하나. 그것이 문제였다.
조 감독은 촬영감독 출신 답게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앵글을 맞추기로 했다. 문을 열지 않고, 틈새로 안을 엿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그 아줌마의 도자기를 반드시 주문해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서.... 마침 문이 조금 열려있으니, 가게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문틈 사이로 드러난 공방의 풍경은 깔끔하지 않았다. 공방이 원래 그런 것이다. 조 감독이 공방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의 눈에는 정리되지 않은 내부가 썩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고개를 약긴 비틀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탁자가 보이고, 도자기 작품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다. 물건들이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는 작업장이었다.
인기척이 없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조 감독은 뒤로 물러서서, 몸을 180도 돌렸다. 계단을 따라 서서히 걸어 올라왔다. 옆에 ‘파란색 공방’이라는 간판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조 감독은 스마일 우체국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저 집은 안되겠어. 수준이 낮은 것 같아. 내 가게의 손님들에게 제공할 음료잔은 수준있게 만들 거야. 품격이 있어야지. 문을 열고 들어갔더라면, 그 아줌마의 주문 요청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거야. 휴~ 다행이지. 내가 그린 그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곳에서 주문할 거야. 비싸더라도 말이야.
다음날.
수영 배우러 가는 날이다. 매주 월, 화, 수 3일 나간다. 동네 인근에 있는 실내 수영장이다.
안방 서랍에서 수영복과 머리 두건, 선글라스 등을 챙겨 가방에 넣고 가게에 잠깐 들렀다가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티켓을 끊은지 1주일 됐다. 조감독은 기초반에 편성됐다. 수영장 난간을 잡고 겨우 물장구를 치는 수준이다. 육지에서만 살아서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가게를 준비하면서, 몸과 정신이 초췌해졌다. 체력을 만회하기 위해 수영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수영 강사가 “나오셨어요?”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조 감독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하하~, 오늘 날씨 좋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기초반에 편성된 다른 수강생들이 보였다. 조 감독보다 나이가 들어보이는 아저씨도 있고, 50,60대 여성들도 있었다. 나이로 치면, 40대 후반인 조감독이 가장 어려보였다.
조 감독은 몸에 물을 뿌리고 서서히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물장구 연습을 많이 한 터라 오늘은 헤엄을 치고 싶었다. 고개를 들고 발 뒤꿈치로 밀면서 팔을 휘저었다. 겨우 1~2m 정도 가다가 물 속으로 몸이 쑥 빠졌다. 다행히 물 깊이가 가슴 높이밖에 오지 않아 물을 조금 마시고 제자리에 설 수 있었다.
강사가 이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그는 조 감독에게 “물 많이 마셨어요?”하고 물었다. “아니, 이 정도는 괜찮아요.”하고 조 감독이 말했다.
“사장님, 이렇게 하세요.”하며 헤엄 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강사는 자신의 손을 뻗어 조 감독이 팔둑 위로 배를 걸치게 했다. “사장님, 이 상태에서 양 팔을 옆으로 벌렸다 오므렸다 하세요. 발은 개구리처럼 모았다 차듯이 뻗으시구요”하고 강사가 말했다. 조 감독은 강사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강사는 그 상태에서 조금씩 조 감독이 헤엄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5m 쯤 진행되자, 강사는 “이 연습을 100번도 하면 스스로 물에 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씩 웃었다. 조 감독은 강사의 팔둑에서 내려와 “하루에 10번씩 하면 열흘이면 뜰 수 있겠네요.”하고 기분 좋은 듯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때 뭔가 뒤통수가 찌릿해진 조 감독은 수영장 난간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한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차!’ 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어떻게 이런일이....’ 조 감독은 급히 몸을 돌려 그 여성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바로 그 아줌마였다. 스마일 우체국에 들어와서 자신이 만든 도자기 컵을 사달라고 하던, ‘파란색 공방’의 여사장님 아니신가.
조 감독은 그 아줌마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도 미안한데, 파란색 공방의 가게문 앞에서 들어가지도 않고 빼꼼히 안쪽을 살피고 돌아왔던 일이 부끄러웠다. 혹시라도 입구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조 감독의 당시 행동은 아주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 여사장은 조 감독의 행동을 CCTV로 다 본 것은 아닐까.
조 감독이 얼굴을 돌리고 있는 사이, 도예공방 여사장은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조 감독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수영장이어서 스마일 우체국 가게를 준비하는 조 감독과, 수영장에서 갓 수영을 배우고 있는 한 남자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조 감독은 시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얼른 밖으로 나왔다. 공방 여사장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라커룸으로 돌아온 그는 “휴~”하고 길게 한 숨을 몰아 쉬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의 물기를 닦으면서, ‘언젠가 또 볼 텐데 어떻게 하지.. 거기에 도자기 컵을 주문하기는 그렇고... 내가 원하는 도자기 디자인이 아니라서 말이야.’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가방을 메고 수영장을 나온 조 감독은 고개를 돌려 수영장 건물을 바라봤다.
“햐~, 수영 좀 배우러 왔더니 앞으로 어쩌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이면 이 수영장에서 공방 사장님을 만나다니....”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