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일) 오전 고향 앞바다.
할아버지 생신을 맞아 시골에 갔던 아들에게 고모부들을 따라서 바닷가에 낚시하러 가도록 보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이날 귀경해야 하는 탓에 낚시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고향에 내려온 김에 낚시 흉내라도 내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 녀석은 바닷가 근처에 가기만 가면 어김없이 낚시하러 가자고 조르기 때문이다.
나는 1시간 쯤 뒤에 바닷가로 갔다. 선창가에 죽 늘어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가족이었다. 둘째, 넷째 매제와 이종 조카들, 남동생과 8월 출산 예정인 제수씨, 그리고 내 아들 등 모두 10명이 넘었다. 대가족이었다. 일부는 낚시를 하고, 일부는 미끼를 매달고, 일부는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낚시대 대신 한쪽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저 놈은 낚시는 안하고 저기서 뭘하나?' 하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다가가서 보니 손으로 입안에 뭔가를 집어넣고 있었다. 나를 말뚱말뚱 쳐다보면서.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두 발 앞에는 굴껍데기가 여기 저기 놓여있었다. 굴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녀석은 깐 굴을 다 먹은 후 일어나서 방금 따온 굴껍질을 발로 세게 밟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밟기에 잘못하면 발을 베일 수 있다고 주의를 줬는데도 막무가내였다. 몇번 세게 밟자 굴 껍데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녀석은 손가락을 넣어서 씻지도 않은 채 꺼내 먹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놈이 시골에서 살았던 나보다 더 촌놈같은 행동을 보이다니 내심 웃음이 나왔다. 녀석의 이종 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신발로 굴껍질을 밟아서 까먹어본 적이 없다. 돌맹이로 치거나, 아니면 굴 껍질을 바위나 돌맹이에 톡톡 쳐서 굴을 빼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바닷물에 씻어서 먹었지, 그냥 입속에 넣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은 요령도 없는, 무식 그 자체이다. 신발로 까먹다니, 역설적으로 도시에서 자란티를 다 보인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쨋거나 고향집으로 돌아와 점식을 먹고 곧 귀경길에 올랐는데, 걱정이 하나 생겼다. 여름에 굴을 잘못 먹으면 위험한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중독은 천천히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들은 바닷가에서 시골 할아버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낮에 잠이 든 것은 평소 볼 수 없는 일이다. 아내가 겨우 깨워서 점심 몇숟가락을 먹이고 서울을 향해 출발을 했다.
차가 출발하자마다 녀석은 또 승용차 뒷좌석에 드러누웠다. 졸리다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차를 타자마자 드러내놓고 드러눕기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휴게소를 몇개나 지나고, 몇시간이 흐르는 동안 녀석은 거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차 속에서 무려 4시간 이상 잠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보통 때 같으면 휴게소가 나오면 뭘 사달라고 졸랐을 놈인데, 아무말도 없이 녹초가 된 것처럼 잠만 자고 있으니 내심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배 아프다는 소리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4시간 이상이 경과한 후 드디어 녀석이 깨어났다. 아내가 녀석을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게했다. 녀석은 아내가 사준 간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어디 아픈데가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리가 아프단다. 다리는 아침 저녁으로 늘 아프다며 주물러 달라는 소리가 입에 붙어있어서 굴 먹은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굴이나 조개같은 것은 여름에 날 것으로 먹지 마라."
"왜 그러는데....?" 아들이 이해못하게다는 투로 반문했다.
"여름 어패류에는 독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잘못 먹으면 위험하거든."
아내가 듣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못먹게 하지 왜 놔뒀어요?"
"이미 먹고 있었던 걸 어떻게 하라고...."
아들이 끼어들었다. "여름에 굴 먹으면 왜 위험한데?"
"집에 가서 인터넷 찾아봐." 내 입에서 인터넷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녀석이 저 누나 못지 않게 컴퓨터에 붙어서 사니까 스스로 찾아서 알아보란 뜻이었다.
여름철에는 어패류를 날 것으로 먹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자칫 마비성 식중독이나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브리오패혈증은 1~2일의 잠복기를 거쳐 급성발열, 오한, 혈압저하, 복통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발열 후 36시간 내에 피부병변이 동반되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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