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아들 녀석 한 놈이 가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며칠 전 회사에서 귀가했더니 아내가 화난 투로 아들 얘기를 했다.
"여보, 저 놈이 오늘 낮에 저금통을 잃어먹었대요."
"그게 무슨 이야기야?"
"글쎄, 집에 있던 동그란 쇠저금통 있었잖아요."
원통형의 쇠저금통에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 차서 한 손으로 들면 꽤 묵직한 느낌이 들었던 저금통이 생각났다. "그래, 있었지. 그런데…."
"그걸 놀이터에 갖고 나가서 친구들하고 돈을 빼서 과자 사먹고, 어디다 숨겨놨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없어졌대요."
"뭐라구!"
"저 놈 하는 짓이…. 그동안 엄마, 아빠도 모르게 젓가락으로 돈을 빼서 친구들하고 과자 사먹고 하다가, 오늘은 아예 놀이터로 갖고 나가서 잃어버리고 와서 하는 소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뚱딴지 같은 소리나 하고. 그 저금통이 친구들 건지, 기가 막혀서…."
아내는 아들에게 벌써 야단을 쳤을 텐데 아직 화가 덜 풀린 듯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들 녀석을 찾아보니 안방에서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누워있었다.
엄마가 야단을 치든 말든 개의치않는 눈치였다. 저 놈, 참 넉살도 좋아.
내가 생각해도 아들 녀석은 참 알 수 없는 일을 많이 저지르는 편이다.
돈 잃어버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학교에서 1~2천원 잃어먹는 일은 다반사이고, 소풍가서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1만원짜리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급우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갔는데, 분명히 호주머니에 넣어둔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3학년 때인가는 겨울 외투를 학교에서 잃어버리고 와서 아내와 외할머니의 속을 상하게 만들었다. 연필, 필통 등 학용품 잃어먹는 것쯤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고학년이 되면서 인터넷 게임에도 열중하고 있는데, 문화상품권 번호를 상대방에게 알려줘 이 놈은 사용도 못하고 바보짓 한다고 중3인 누나한테 핀잔을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언젠가는 학교가면서 가방을 들고 가지 않아 학교 교실까지 갔다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온 적도 있었다. 학교 가는 놈이 책은 놔두고 몸만 갔던 것이다. 이 녀석의 등교시간은 빠른 편이어서 반에서 일찍 등교하는 급우 중에 3명 안에 꼽힌다고 했다. 교실에서 친구들의 가방을 보자 책가방을 안가지고 갔던 게 생각났다는 것이다.
내가 안방으로 들어서자 이 놈은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녀석의 모양을 쳐다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야, 이 놈아. 엄마 속 썩이니까 좋아?"
눈을 감고 있었지만 녀석은 내 말을 듣고 겨우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이 놈아, 이러다가 너 옷도 잃어버리고 맨몸으로 다니는 것 아니야?"
아들은 대답이 없다. 그래도 나는 말을 계속했다.
"이러다가, 나중에 커서 너 집까지 잃어먹겠네."
녀석은 아무 대꾸가 없다. "아빠가 보기엔, 너 정말 집도 다 잃어먹겠다. 안 그래?"
아내가 밖에서 듣고 있다가 한마디 한다.
"저 놈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그 저금통이 제 것도 아니래요."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속으로 아들 놈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 것이 아니겠지. 그 저금통은 너가 산게 아니니까. 동전도 엄마가 대부분 채워넣었을 테니까.'
나는 아들의 안경을 벗겨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일찍 자그라."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니 놈이 무소유를 깨우친 놈이다. 무소유가 뭔지 알기는 알고 그러는 거야."
아들은 옆으로 돌아누웠다. 졸리는 듯했다.
아내는 여전히 속이 상한 듯 했지만,
녀석은 곧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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