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내가 만든 떡볶이

투광등 2011. 3. 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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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7(월).

평소보다 좀 일찍 귀가했다. 딸과 아들이 뭘 사달라고 졸랐다. 한창 클 때라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집에 들어온 내가 나갈리가 만무했다. 일종의 아이들에 대한 나의 원칙이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게에 가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다.

 

내가 제안했다. 아빠가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딸이 피식 웃는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끔 만든 음식에 대해 맛이 없다며 거의 먹지 않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기대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떡볶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시장이 반찬이란 옛말이 있으니 일단 만들어 놓으면 적어도 젓가락은 갖다 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녀석들이 안먹더라도 내가 먹으면 될 것 아닌가.

냉장고에 떡볶이 재료가 있으므로, 언젠가 요리를 해먹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여태껏 떡볶이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만드는 법도 모르고, 간식류를 즐기지도 않는 편이다. 

어쩌다 배고프면 길 가다가 사먹는 정도다.

 

이제 상상력을 동원해서 떡볶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냄비 같은 후라이팬에 물을 3분의 1가량 붓고 물을 끓였다.

아내에게 고추장이 어디 있는지 물으니 가르쳐준다.

매우 큰 통에 고추장이 가득 들어있었다.

한눈에 시중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서 시골 어머니가 주신 고추장임을 알아채렸다.

"이거, 한 10년은 먹겠네." 이런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ㅎㅎ..." 아내가 웃고 만다.

 

고추장을 큰 수푼으로 가득 서너번 떠서 후라이팬에 넣고 물에 잘 풀리도록 저었다.

한쪽에서는 냄비에 불을 올리고, 계란을 넣고 삶았다.

후라이팬에 물이 펄펄 끓을 즈음 딱딱하게 얼어붙어있는 떡볶이를 물에 행군 후 집어넣었다.

계란도 거의 익은 것 같아 찬물에 급히 담갔다가 껍질을 깠다.

후라이팬에서 떡볶이가 서서히 익자 물이 졸아들었다.

물을 좀 더 붓고, 설탕 대신 엿물을 조금 부었다.

그리고 껍질을 깐 삶은 계란을 넣었다.  

물이 금세 졸아 또 밥그룻에 물을 담아 부었다.

다시 물이 끓을 때까지 고추장 양념이 떡과 계란에 골고루 묻히게 저었다.

그리고, 요리가 끝이 났다.

 

그룻 2개를 챙겨 떡볶이를 담고, 그 위에 계란 2개씩을 올렸다.

"딸, 아들! 아빠가 만든 떡볶이 먹어볼래?"

텔레비전에서 만화 보느라 정신없는 두 녀석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자리에서 요지부동이다. 아빠가 만든 거니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룻과 젓가락 챙겨서 갖다바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하, 녀석들이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에이, 이게 떡볶이야!" 두녀석이 거의 같은 반응이다.

"그럼, 떡볶이지 뭐야?" 내가 한마디 했다.

"떡볶이가 맵지도 않고 싱겁잖아." 딸이 말했다.

"이것 좀 잘라서 하지, 왜 이리 커?" 아들이 거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니 딸이 눈치를 채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아빠가 만든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들도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다.

두 녀석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는 이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올해 고등학교 들어간 딸이 외쳤다. "이거, 초상권 침해야."

 

두녀석이 카메라를 피하는 바람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찍었다.

맛이 없다면서도 내가 만든 떡볶이를 먹어주는 딸, 아들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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