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뻥규민

투광등 2007. 1. 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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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요즘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오후에 집 근처 태권도 도장에 나가는 것이 이 녀석의 유일한 공식 외출이다. 태권도장에 나가는 것이 재미있는 듯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녀석은 도장에서 배워온 실력(?)을 가끔씩 나를 통해 확인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주먹을 내지르고 발로 마구 찬다. 나의 무공은 녀석의 경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서 녀석의 전방위 공격을 충분히 방어하고도 남는다. 녀석의 공격을 밤새도록 받아도 내가 도저히 질 수 없는 대결이다. 그러나 녀석의 장난이 심해진다 싶으면 내가 "그만!'하고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장난을 너무 오래 받아주면 어느 순간 녀석의 심사가 뒤틀려 아빠를 정말 감정적으로 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녀석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얏!" "얏!"하면서 발차기를 계속한다. 아빠가 방어하면서 피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두세번 경고에도 계속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굳은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겁을 준다. 그 때서야 녀석은 슬그머니 물러선다. 끊고 맺는 것을 분명히 해줘야 녀석은 말귀를 알아듣고 따르는 것이다.

 

이 녀석은 본능적으로 나를 멀리한다. 아빠가 먹던 물, 아빠가 먹던 밥, 아빠가 사용했던 숟가락 등 아빠가 조금이라도 손 댔던 것은 물건이든, 음식이든, 심지어 과자조차 기피한다. 아빠 기피증세가 남다른 놈이다.

 

그런데 장난할 때는 나를 최고의 파트너로 삼는다. 나를 때리고 놀리는 것을 아주 즐기는 놈이다. 혼자서 입이 째지도록 웃는 표정을 한치도 숨김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고약한 놈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녀석을 기죽이는 방법은 식은 죽먹기이다. 녀석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금세 뻥규민~이란 말이 떠올랐다.

 

"야, 이놈아. 이제부터 너는 '뻥규민'이다."

그러자 녀석이 시무룩해지면서 "왜 뻥규민인데?"라고 묻는다.

"뻥규민이니까 뻥규민이지!"

"나, 뻥규민 아니야~…."

 

녀석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에게 또 발차기를 한다.  이건 장난으로 차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놀린데 대한 보복이다. 자기를 뻥쟁이라고 부르는 아빠가 미웠던 것이다.

 

"야, 잠깐. 아빠가 왜 너가 뻥쟁이인지 가르쳐주지."

"그게 뭔데~."

"이놈아, 너는 아빠에게 아까도 그러더니 지금도 발로 뻥~ 뻥~ 차지, 또 말로 뻥치지 그러니까 뻥규민이지." 녀석이 말로 뻥치는 일은 숱하게 많아서 녀석의 누나도 인정하는 터다.

 

녀석의 화난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녀석은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발로 뻥차지, 말로 뻥치지~"하고 따라 옮기면서 또 나를 발로 뻥뻥 찬다. "너, 정말 뻥규민 될래?!" 하고 내가 말하자, 녀석의 누나가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이 녀석의 발차기는 언제쯤 중단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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