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아들의 아이스크림 먹는 법

투광등 2008. 6. 1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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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이 낮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꽤 이례적이다. 가끔 저녁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느닷없이 "우유 많이 사와라." "빵 사와라."고 주문하는 녀석이다. 대낮에 전화하기는 드문 일이다. 어쨌든 무슨 일인가 해서 왜 전화했냐고 물었다.

녀석이 하는 말이다. "아빠,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며칠 전 장인어르신이 아이들 먹어라고 사오신 것이다.

나는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반만 먹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녀석은 "알았어."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사전에 허락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기특한 일이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귀가하니 아내가 내게 말했다.

"규민이 이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한숟가락만 남겨 놓고 다 먹었어요."

"그래? 내가 반만 먹어라고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나 한테도 전화를 했지 뭐예요.' 아내가 말했다.

"…."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녀석이 나 한테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냐'고 해서 '엄마와 누나 것을 남겨 놓고 3분의 1만 먹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한 숟가락밖에 안남아 있는 거잖아요."

아내는 화가 날만 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더구나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누구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한 숟가락으로 만족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아내는 아들에게 " '왜 이거밖에 안 남겨놨냐'고 했더니 '아빠가 또 절반을 먹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녀석을 혼내야 겠다는 생각에 앞서 먼저 웃음이 나왔다.

아내도 녀석의 말에 기가 차서  더이상 질책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절반 먹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3분의 1먹고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을까. 만일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전화했더라면 한 숟가락도 남아있지 않을 뻔 했다. 그나마 한 숟가락이라도 남겨 놓은 것을 장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내는 아들을 쳐다보며 "요느무 자식, 다음에 코메디언 할려나보다." 하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의 비아냥이 달갑지 않은지 "아니야~." 하고 짜증을 냈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나중에 커서 종이접기 선생님 할래?"하고 물었다. 아들은 종이접기에 매우 취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아무 말도 없이 접고 있던 종이를 들고 큰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이스크림 먹은 걸 두고 엄마, 아빠가 한 마디씩 하는 모양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안에서 종이 접기에 열심이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이게 뭔 줄 알아?'하고 물었다.

"괴물? 공룡?" 나의 추측이었다. 녀석은 공룡을 접거나 괴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지레 짐작한 것이다.

"아니야, 이건 머리 세개 달린 학이야." 녀석이 접은 종이를 들며 말했다.

그럴 듯하게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접은 것일까.

"인터넷에서 보고 접은 거야?"

"아니야, 내가 그냥 접은 거야."

정말일까. 녀석이 혼자서 마구 접은 것이 머리 3개 달린 학이 된 걸까.

나는 녀석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녀석은 자주 반대를 위한 반대의 대답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것도 하는 짓이 장난스럽게 하니 야단칠 수도 없고 말이다.

괴짜같은 아들이 어디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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