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아들의 눈물

투광등 2006. 7. 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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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아빠로서 측은한 생각도 들고, 때론 남모를 웃음도 나온다. 녀석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일이다.

 

학교를 가다말고 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더니 뭔가를 놓고 갔다는 것이다.  

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오라는 안내문이라고 했다.

그걸 지금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을 준 후, 녀석이랑 안내문을 찾았다.

녀석이 휴지통도 뒤져보고, 책상 서랍을 열어보기도 하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녀석이 또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웃음이 나왔지만, 눈치 채지 않게 참았다.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안나는 모양이었다. 난들 어이 알겠는가.

 

녀석에게 책꽂이와 노트, 책상 아래를 훑어보게 했다.

마침내 책상 한 구석에서 선생님이 프린트해서 내 준 안내문을 찾았다.

 

안내문은 우유 배달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학 동안에 우유를 집에서 배달 받을 수 있는지,

배달을 받는다면 어떤 우유를 택할 것인지 체크하라는 내용이었다.

우유 회사는 K사와 S사 두 곳만 적혀 있었다. 양자 택일이었다.

나는 안내문을 작성한 후 사인을 했다. 

녀석에게 넘겨주면서 빨리 학교에 가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현관문을 나서면서 또 눈물을 보였다.

나는 "너 또 왜 울려고 하느냐?" 하고 물었다.

"나, 배 아파~." 

 

녀석이 배 아프다는 소리를 듣자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것인지, 학교로 그냥 보내서 참도록 해야 할 것인지….

 

나는 곧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아, 매일 아침밥을 안 먹으니 그렇지. 내일부터는 아침 제대로 먹어!"

녀석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늘 먹었어."하고 대답했다.

"이 놈아, 그게 먹은 거야? 한 숟갈도 안 먹고."

"한 숟갈 더 먹었어."

 녀석은 내가 하는 말마다 말 대꾸다.

 

사실 아침마다 녀석과 나는 밥 전쟁을 벌인다.

아주 소량을 퍼주지만, 녀석은 그것마저 한 숟갈 정도 먹는 시늉만 하고 수저를 놓기 다반사다.

이러다보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엔 녀석의 배가 아픈 것은 식사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에게 "내일 아침부터는 밥 똑바로 먹어. 알았어, 몰랐어?" 하고 다그쳤다. 

녀석은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맘에 없는 말을 억지로 내뱉는 눈치였지만, 곧이 들어주는 척 했다.

배 조금 아픈 거 참는 것도 배워야 한다.

어지간한 복통, 두통 등은 이상 시간이 지나면 낫기 때문이다.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녀석을 보고 "차 조심해!" 하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돌아보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가던 녀석이 이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배아프다고 눈물 흘리는 자신을 걱정해주기보다 

아침 밥 제대로 먹고 학교 가라고 호통치는 아빠가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너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것은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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