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본문 중에서

GOP 철수

투광등 2006. 3. 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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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어느 날, 6개월 가까이 정들었던 GOP에서 철수를 단행했다. 전날 밤까지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쳤지만, 철수하는 날은 낮부터 쾌청한 날씨로 변했다. 야간에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의 땀방울이 하늘로 올라가 영롱한 별빛이 된 듯했다.


  그동안 GOP 근무에 투입됐던 우리 대대 병력은 한번에 대이동을 개시했다. 밤낮으로 지키고 정들었던 휴전선을 다른 부대에 이상 없이 넘겨주고 페바지역으로 향했다.


  GOP 근무 동안 천지신명이 우리를 보우하사 단 한 건의 작은 사고도 없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인가. 모두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위험한 산길을 타고 내려오면서도 발걸음 걸음마다 군화소리가 경쾌했다.


  산길을 내려와 평탄한 도로에 이르자 가속도를 냈다. CP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민간인들이 보였다. 뜻밖에도 연대장 등 상급부대 간부들과 사모님들이 행군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완전군장으로 온 몸이 땀에 젖은 우리를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야간에는 어떤 소리도 내선 안 되는데, 사모님들은 병사들의 행렬이 끝날 때까지 잔잔히 박수를 치며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 순간의 감동과 감격스러움을 어디에 비유할까. 마치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군인처럼 사기가 오르고 힘이 솟았다.


  군인의 아내로서 사병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작은 성의라도 보이려는 사모님들, 그 분들의 이러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155마일 휴전선! 이제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하는 날까지 GOP에는 다시 갈 기회가 없다. 제대해서는 더 더욱 휴전선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믿고 싶다. 통일의 그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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