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본문 중에서

‘155 마일’ 철책선

투광등 2006. 3. 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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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토) 휴전선에 있는 ○○기지를 다녀왔다. 대대병력이 이미 철수했으므로 2중대에서 나를 포함해 일부 병력이 철책보수 작업 차 선발됐다. 지난번 도로복구 작업 때도 일부 기지의 철책선을 보수한 적이 있었다. 철책 아래 흙이 떨어져 나가 구멍이 뚫린 곳을 돌과 흙으로 단단히 틀어막는 작업이었다. 당시에도 북녘 땅을 볼 수 있었으나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는 2중대 소대생활에 많이 적응이 됐고, 짬밥의 위상도 찾은 터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철책 보수작업을 하면서 쉴 때마다 휴전선 너머 북쪽으로 시선이 갔다. 특히 휴식시간에 담배 연기 사이로 북녘 땅을 바라보며 고참, 졸병끼리 인민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지는 전망이 좋았다. 아주 먼 곳까지 훤하게 보였다. 날씨가 맑아 굽이굽이 고개를 내민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무장지대 끝단에 북한 경계선 지역이 보였다. 남쪽에서 가장 가깝고 잘 보이는 북한 지역 산허리쯤에는 흰색으로 ‘무료교육’이라고 크게 쓴 글자가 눈에 쏙 들어왔다. 인민군이 휴전선을 지키는 우리 아군을 교란시키거나 유인하기 위해 만든 선전용이다. 그 아래, 옆으로는 황토색 도로가 보였다. 보급로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민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편으로 산 너머 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산 하나. 그 곳이 바로 외금강이라고 했다. 금강산의 일부라는 곳이다. 이날처럼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외금강은 수많은 산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육안으로는 외금강의 절경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철책선! 내 땅이면서도 더 이상 갈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북한은 우리 쪽을 향해 대남 방송을 요란스럽게 해대고, 우리 측은 가요와 팝송으로 맞대응하고 있었다. 두 동강 난 조국의 슬픔과 가로막힌 철책선의 비애가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향의 가을 하늘처럼 푸르렀다. 눈이 부셨다. 그러나 느낌은 달랐다. 남과 북을 잇고 있는 프루션블루 빛깔이 너무 애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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