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본문 중에서

독사탕(毒蛇湯)

투광등 2006. 3. 1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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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화창한 날씨다. 어느 틈엔가 노란 민들레가 소초 주변에 잔뜩 피어났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작은 나비들이 꽃과 들풀 위를 오가며 작은 몸짓으로 소초 주변에서 나풀댄다.


  한가한 오후였다. 이날 뱀 한 마리가 소초 주변에 나타났다가 소대원들에게 목격됐다. 일ㆍ이병 2~3명이 뱀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야, 잡아!” 약80~90㎝쯤 되어 보이는 제법 큰놈이었다. 박신교 분대장 등은 “보신탕 해먹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고참들도 마찬가지였다. 졸병들은 뱀을 잡아 일단 소초 옆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순찰을 돌고 온 소대장, 선임하사는 “누가 잡았느냐?” “어디서 잡았느냐?” “몸보신하자!”고 웃으면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늘 똑같은 소초 생활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독사 한 마리는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소대장 이하 이등병까지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모두가 뱀과 정력의 상관관계를 얘기하고 들으면서 몇 번씩 ‘빙그레’ 웃을 수 있었다.


  구워먹는 게 좋은지, 삶아먹는 게 좋은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모두 맛을 볼 수 있도록 삶기로 했다. 소위 ‘독사탕’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 요리는 매우 간단했다. 물을 붓고 그 속에 독사를 통째로 넣어 펄펄 끓이는 게 전부였다. 투명했던 물이 부옇게 변했다. 마치 쌀뜨물처럼 허옇게 보글보글 끓었다. 이렇게 하여 요리 끝. “자- 맛보십시오!”


  소대장과 분대장, 병장들이 맛을 보았다. 나도 조금 맛을 보았다. 전혀 생소한, 전혀 적응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이었다.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박일수 소대장도 “맛이 없다.”며 숟가락을 놓았다. 김한도 중사는 “소금 간을 쳤느냐?”고 물었다. 간도 안 맞는 이 독사탕을 누가 먹을 것인가. 이 곳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을…. 다들 못 먹겠다고 나가 떨어졌다.


  남은 국물은 누가 다 먹어 치웠을까. 알 수 없다. 난 그 곳을 피해 버렸으니까. 아마도 졸병들이 다 먹지 않았을까 싶은데 혹시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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