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본문 중에서

DMZ 노이로제

투광등 2006. 3. 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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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1일. 휴전선 전방에 이상한 징후가 보여 간밤에 비상근무를 섰다. 약 4시간 후에 상황이 해제돼 눈을 조금 붙일 수 있었다. 난 각오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불굴의 투지와 신속한 상황 판단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DMZ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어떤 날은 비가 내리고, 어떤 날은 비와 바람이 사선을 그으며 몰아치고, 어떤 날은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고, 어떤 날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또 어떤 날은 조요한 달빛이 내려 앉는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요란스런 스피커 소리다. 매일 밤 초병들은 북으로 유인하기 위해 틀어대는 대남 심리전 방송에 시달린다. 또 북한의 심리전 방송을 방해하기 위해 우리가 내보내는 가요방송도 때로는 귀찮다. 밤마다 울려대는 남북의 스피커 소리는 방송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잡탕이 돼서 초병들의 혼을 빼놓는다.


  구름이 많이 낀 밤, 전방의 철책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숨바꼭질 하듯이 구름 속에 숨어있는 별들을 찾아본다. 하나, 둘, 셋. 구름 사이로 별 두세 개가 겨우 얼굴을 내민다. 하늘의 구름과 별은 저렇게 조용한데 남북을 가로 잇고 있는 DMZ의 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GOP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동안은 대남 방송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귀를 막지 않는 한 저절로 들을 수밖에 없다. 가요방송을 내보낸다 해도 조금만 신경을 쏟으면 다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심리전 방송에 현혹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야, 저 소리 듣고 철책선 넘어가는 것 아니지?” 농반, 노파심 반으로 부사수에게 넌지시 던져본 말이다. 부사수는 소리 없이 웃으며 “안 넘어 갑니다.” 하고 대답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스피커 소리! 처음 한동안은 긴장 반, 호기심 반으로 견뎌냈다. 그러나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아니다. 그 소리가 그 소리다. 특히 밤에 틀어대는 스피커 소리는 너무 가까이 있고 크다. 이러다가 DMZ 소음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과민한 탓일까. 긴장이 떨어져서일까. 심적인 안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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