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들의 귀가 시간이 늦다. 매일같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졸업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드느라 늦는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자정이 되기 전에 들어왔다. 의외였다. 아내는 "웬 일로 일찍 들어왔냐?"며 반기는 모습이었다. 녀석은 무덤덤하게 고개만 끄떡하는 반응을 보였다. 축 처진 어깨 위로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제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뭔가를 하나 식탁 위에 내놓았다. 아내는 "이게 뭐냐?"라고 물었다. 아들은 "아빠 선물!"이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에 TV를 보던 나는 '갑자기 무슨 선물이지.'하고 궁금해서 돌아봤다. 검은색 벙거지 모자였다.
아내는 "무슨 일로 아빠에게 선물을 다하나?"라며 "엄마 선물은 없나?"라고 섭섭한 눈빛을 지었다. 선물이라는 말에, 아빠 선물만 가져온 아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빠 생일 선물이야. 공구한 거야." 아들의 대답이었다.
나의 생일선물로 벙거지 모자를 공동구매로 싸게 샀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웃으며 나더러 머리에 써보라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선물을 받으니 내심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버이날 메모 선물 이후, 선물 같은 선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모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한 겨울에도, 한 여름에도 모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 등산 모임에 가면 강한 햇빛을 가리기 위해 가끔 앞창 달린 모자를 쓰기도 한다. 벙거지 모자는 나의 상상밖이다.
그렇지만 이제 어쩌겠나 싶다. 내가 생각하는 나이와 아들이 보는 나의 나이는 차이가 매우 큰 듯하다. 아들이 나름 생각해서 샀을 텐데, 모자걸이에 전시만 해놓고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올 겨울엔 벙거지 모자와 친해져 봐야겠다.
'잘 어울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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