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말봉 선생님과 수제자 친구

투광등 2006. 3. 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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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변에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접한다.

 

구청장이나 시장, 군수 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도 있고, 광역 의원이나 기초 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며칠 전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기 친구의 부인이 이번 선거에 시의원으로 출마하는데, 그 사무실에 같이 가보자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친구와는 무관한 사이라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바람도 쐴 겸 다른 볼 일도 보기 위해 같이 가기로 했다.

 

3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친구를 만나 시내를 벗어났다. 친구의 차 안에는 2년 전 시골의 우리집을 방문했던 末峰 선생님도 타고 계셨다. 그 때 보고 처음 뵙는 자리였다. 너무 반가웠다.

말봉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86세임에도 건장한 모습이었다. 직업은 풍수학 전문가이시다. 예전에 나의 시골집을 방문한 것도 사실은 우리 집의 풍수와 묘자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내 친구가 말봉 선생님을 모신 것은 몇년 전인데, 다른 분을 모시다가 말봉 선생님으로 스승을 바꾼 것이다. 말봉 선생님은 친구가 어디 가보자고 하면 전국 어디든 가시는 분이다.

 

말봉 선생님은 "심평보 씨. 집안은 다 편안하시나?"하고 시골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셨다. 그러고선 "근우 친구한테서 받은 행군의 아침은 잘 읽었네. 글 솜씨도 좋고 아주 잘 썼던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읽었네" 하고 칭찬하셨다. 나는 그보다는 말봉 선생님이 그 책을 정말 다 읽으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다 군대 이야기를 담은 그 책을 과연 다 읽으셨을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말봉 선생님은 "그 책 끝까지 다 보았는데 정말 잘 썼더라"고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 역시 "졸저를 다 읽으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사의를 표했다. 친구도 얼마 전 말봉 선생님이 행군의 아침을 다 읽으셨다고 하시면서 매우 칭찬하셨다고 전해준 기억이 있어 말봉 선생님의 말씀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책을 다 읽으주시고 평가까지 내려주시니 감지덕지할 일인 것이다.

 

드디어 친구의 친구 부인의 선거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은 비좁았다. 선거 준비를 위해 최근 임대한 사무실 같았다.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친구는 사무실 배치에 대해 설명했다. 말봉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지식을 하나씩 풀어놓는 것이다. 말봉 선생님도 친구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어느 덧 친구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수제자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친구는 사무실 배치가 맞지 않다면서 후보 책상은 저쪽으로, 사무원 책상은 저기로, 회의실은 따로 두지 말고 후보와 사무원 책상 사이에 있는 모퉁이 공간을 활용하라고 말했다. 사무실 입구 문은 한 쪽을 막고 다른 쪽으로 낼 것을 주문했다. 화분과 책장은 나머지 빈공간에 두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말봉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는데, 입구에 밝기가 현재보다 강한 빨간색 백열등을 달아라고 말했다.

 

친구가 이 곳에 말봉 선생님을 모시고 방문한 것은 후보자의 사무실을 풍수지리에 맞게 배치하는 일을 해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마도 며칠 후면 이 사무실은 배치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내 상식으로는 과연 이런 것이 효험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풍수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오는 5월 31일이면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풍수가 어느 정도 통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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