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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도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을까 머무를 수 있다면 어디쯤에 머무를까.
결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역마살의 발동일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장마가 몇일 전부터 간간히 빗줄기를 흩뿌리고 있다. 갈까 말까 몇번을 주저하다 끝내 길을 나서고 말았다.
발길을 어디로 할까. ...
며칠전 친구가 게시판에 올려준 사진 한장이 머리를 스쳤다. 망설일게 없었다.
낙동강 칠백리 물길을 따라 점점이 흩어져 우리네 조상들 삶의 애환을 달래 주었던 주막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三江 酒幕
내가 읽은 잡지에서 누군가 그랬었다. 늙은 주모가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배도 끊기고 사공도 떠나버린, 이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그 주막을 찾았다.
사내들의 땀냄새가 엉겨 붙어 왁자찌껄 해야만 할 주막엔 공허한 세월의 흔적만 남아 있었고 스러져 가는 흙벽에 덕지 덕지 바른 시멘트 자욱이 주막의 이력을 한눈에 보여 주고 있었다.
봉당 한켠엔 플라스틱 맥주박스에 맥주랑 소주가 뒤섞여 수북히 쌓여 있었다. 옛 사내들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 통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아마도 옛날을 그리워 하며 가끔 찾아 오는 요즘 술꾼들의 몫인가 보다. 아무래도 그들도 입맛이 달라졌나 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처럼 옛날을 그리워하며 참이슬과 하이트를 마신다는게.
푹푹찌는 열기를 피해서 문지방으로 오르는 커다란 댓돌에 앉았다. 돌덩어리라서 그런지 엉덩이가 이내 시원해 지는게 참 묘했다. 턱을 괴고 생각 해 보았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혹시 소금배를 끌고 안동으로 가시다가 여기서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시고 농 짓거리도 하면서 시름을 달랬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그때에 태어 났었더라면 나도 아마 주막과 인연했으리라.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것은 나루를 지키고 있는 늙은 회화나무와 거기에서 끊이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소리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강물소리 정도...
이제 주막은 강과 마을로 부터 외면당하게 됐다. 제방이 강으로부터 분리했고 최근엔 강을 가로지르며 마을 앞으로 높게 둑을 쌓아 국도를 내면서 마을에서 조차 접근하기 힘들게 만들어 놨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어쨋든 내가 찾았던 그날은 잡지나 TV에 많이 소개돼 얼굴이 익은듯한 주모가 굽은 허리를 땅에 대고 붉은 팥씨를 심고 있었다.
"이거 아무렇게나 꼽아도 혼자는 실컷 먹지" "나는 유가여...시집은 배씨고, 팔십아홉이야" 그랬다. 잡지에서 읽은 대로다. 누가 있어 이렇듯 이야기 봇다리를 풀 수 있을까. 참으로 많은 세월과 사연을 안고 살아온 이력으로 인해 여든 아홉이란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눈빛은 해맑아 보였다.
사진 한장 찍자고 하니 "하도 마이 찍어서..."주저하시더니 이내 포즈를 취해 주신다. 역시 이력이 나셨다.
"내가 가고 나면 이 집도 뭉개지지"라며 물끄러미 주막을 쳐다보는 늙은 주모. 그 시선의 끝은 어딜까. 짐작치도 못할 곳이 아닐까.
강물은 말없이 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흐르고 내일까지 또 흐르겠지만...
한 토막을 살다가는 우리들 저 강물처럼 오늘도 흐르고 또 내일도 흐를수 있는 무한 존재가 아니기에 세월의 흐름과 세태의 변화를 아쉬워 할 수 밖에 없지 않던가 주막엔 그 어떤 것도 머무름이 없었다. 강물도 흐르고 길손들도 흘러 가고 세월도 흐르고, 기쁨도 슬픔도 모두 흘러 사라져 가는 오직 멈추어지지 않고 흐르고 흘러 갈 뿐이다. 삶의 전부를 길가에 내 팽개쳐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 왔을 그녀 늘 머물지 않고 흐름을 가까이 한 탓일까 눈가엔 지난날들의 아쉬움 보다는 초연함이 묻어 나온다. 마당 한 켠에 소담하게 자라고 있는 참깨 밭에서 이어지는 그의 독백에서 지독스럽게 무거웠던 삶의 아픔과 서러움이 베어 나왔다. 아마도 지난 세월을 굳이 잊으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러 되새기려도 않은 독백이리라 언제까지 주모의 독백이 이어질까. 그 중얼거림이 끊이지 않는 한 주막은 그기에 있을 것 같은데. 돌아서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고개를 돌려 江건너편의 고향 땅을 바라다 보았다. 오뉴월 염천에 온 산천이 거친 숨소리를 내뿜고 있다.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기 위한 자연의 엔진소리다. 한편으론 댓돌에 기대 한동안 감상에 졌었던 나를 질타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저만치에서 이리저리 둘러보시던 末峰 선생님께서 다가 오셔서 한마디 하신다. "자네 오늘 보니 건달끼가 있어" 무슨 뜻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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