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행군의 아침'은…

'행군의 아침' 책 머리에

투광등 2006. 3. 4. 11:51
반응형
SMALL

거리에서, 또는 버스나 전철 속에서 푸른 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가끔 본다. 그들을 바라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박력과 생동감이 전해져 옴을 느낄 때가 많다. 눈에 익은 부대 마크를 단 군인을 볼라치면 소주 한잔 사주고 싶은 마음이 일 때도 있다.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군대시절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하루하루 복잡다단한 사회생활에 짓눌려 지난 일을 추억할 겨를이 없다. 특히 병영생활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경험이어서 먼 옛날 남의 일처럼 치부되고 마는 것이다.

(행군의 아침의 그림)

반응형


내가 언제 깡다구와 인내심 하나로 버텨냈던 힘든 시절이 있었던가. 내가 언제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언제 나의 가족과 이웃,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때가 있었던가. 내가 언제 혈기 충만한 청년으로 살았던 날이 있었던가. 이런 물음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고 산 적이 있을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군대란 당연히 갔다 와야 하는 곳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난 97년 IMF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실직은 나만의 아픔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더 큰 걱정과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 무렵,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언젠가 내가 군대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그 시절, 이런 말이 있었다. “여기서 내보내준다면 깡통을 차고서라도 살겠다.”고 말이다. 사회인으로 돌아간다면, 그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든 살아가겠노라고 호언했다. 그 시절, 우리들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입대한지 20여년 만에 과거 군대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게 된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글을 탈고하기까지 나름대로 어려움과 고민이 적지 않았다. 당시 군대에서 썼던 수양록은 군대의 특성상 거두절미해 버린 내용이 많았다. 잊어버린 기억들을 하나 둘 살려내야 하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또 하나, 끝없는 자문이 하나 있었다. 80년대 군대 이야기를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남자들의 술자리 이야기 중 많은 내용이 군대 이야기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군대에 대해 모르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군대를 가야 하고, 입대를 앞두고 있다면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군대에 대해 막연히 두려운 생각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요즘 신세대 여성들은 직업 군인을 자원하는 경향까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개인의 군대생활 체험기를 통해 군대가 어떤 곳인지, 군인들의 일상은 어떤 것인지, 개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서술함으로써 군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물론 필자의 병영 체험기인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과정과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따른 감정이나 느낌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복무 지역과 보직에 따른 근무 환경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사실 나는 전역 후 군대 이야기를 남들에게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곡절이 많았던 탓이리라. 심리적으로 군대를 4번 갔다 온 사나이라면 듣는 사람들이 의아해 하거나 웃을지도 모르겠다. 보충역(공익근무요원) 판정으로 1회, 귀향조치로 1회, 재입대로 1회, 하교대로 1회 등 이렇게 하여 군대를 4번 갔다 왔다는 것이다. 실제는 한 번 갔다 온 것이지만, 변화무쌍했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심리적으로 네 번의 입대를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수고해준 인포그래픽 이문선 사장과 매일경제신문 김종현 기자, 김재천 학형, 후배 장천석, 그리고 책을 쓰기까지 힘이 되어준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동료 및 후배들에게 감사한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