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25년만에 만난 고교 친구

투광등 2006. 10. 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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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의 만남이다.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런 친구들을 한꺼번에 여러 명 만났다. 40대 중반에 순수했던 사춘기 시절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동안에도 가끔 모임 때 나오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몸과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얼마 전 군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한 친구를 축하해주기 위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가 육사 기수 중에서 선두그룹으로 대령으로 승진해서 모임에 나온다는데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현역 장교이므로 친구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나는 '땅개'로 전역했으니, '말똥 3개'의 연대장 계급인 대령을 하늘처럼 우르러 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부터 동기모임 회장(강철구)과 총무(주용태)가 언론사 현역 데스크인 문병환 친구가 운영하는 서울 혜화동 근처 'M그룹'으로 오후 7시까지 나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당일인 10월 13일 금요일, 이것 저것 정리하면서 모임 시간인 7시가 훌쩍 지났다. 대충 마무리하고 시간을 보니 9시가 가까웠다.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총무는 "어디냐"고 묻더니 빨리 오라고 했다. 나는 참석자들의 이름을 받아 적었다. 너무 오랜 세월이라 이름과 얼굴이 연상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쓴 책, '행군의 아침'을 하나씩 선물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10여권의 책에 '저자 싸인'을 하고 가방을 챙긴 후 사무실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20여분 걸려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몇명을 제외하곤 길가다 만나면 정말 남으로 오인할 만큼 많이 변해 있었다. 서로 "내 알아 보겠나?" 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떤 친구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고마워하기도 했다. 얼굴을 알아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흐뭇한 일인 것이다. 차진찬, 김기현, 김영재, 주용태, 주권식, 하홍근, 강철구, 김원일, 이치형, 문병환, 변윤환, 주용태, 전운수,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김 모 대령(먼저 온 공창원, 김성곤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떠남).

 

김 대령도 웃으면서 "야, 평보야. 내 알아보겠나?"하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아, 너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하고 농을 건넸다. 그랬더니 김 대령 왈, "야, 너는 나하고 친했는데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하고 실망하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농으로 한 말인데, 김 대령은 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야, 내가 농담한 거다." 라고 해명해도 오해를 쉽게 풀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게 '평보는 학교 다닐 때 나하고 친했는데 나를 못 알아본다'고 토로했다. 군인이라 그런지 순진하기는…. 

 

병환이의 기타와 M그룹 싱어들의 노래, 김 대령의 노래를 들으며 서로 고교 추억담을 나눴다. 사회적 지위가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듯, CEO가 된 친구들은 여유가 배여있었다. 중간 간부 자리에 있는 친구들은 여유로움과 치열함이 교차해 보였다. 자리가 파할 무렵, 가져간 '행군의 아침'을 한권씩 나눠줬다. 나의 군 생활 체험담이란 점에서, 친구들은 책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다. 당시의 기록이 없다면 20년이 지난 군대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썼던 수양록 덕분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밤 11시경, 병환이가 2차로 노래방에 가잔다. M그룹의 리딩싱어로 활동하고 있는 신문사 여기자(S)의 부모가 경영하는 노래방이라며 호기심을 돋웠다. 실제로 S 여기자는 친구들 앞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몇 곡의 노래를 선사했다. 혜화동의 1차 모임을 파하고, 2차로 목동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차진찬, 김원일, 전운수, 주권식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모두 이동했다. 노래방 건물에 도착하자 시계 추는 거의 밤 12시, 자정을 넘어 14일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S 여기자 포함), 잠시 대화 시간. 청와대 경비부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한 기현이가 군대 생활에 대해 회고했다. 장세동 당시 비서실장이 지나갈 때, "충성!" 하던 포즈를 취하며 바짝 긴장했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눈 이 왔을 때 넉가래로 눈을 치우면서 한 쪽에 눈을 모아 각을 잡던 일이 매우 고역이었다고 엄살을 부렸다. 전방으로 한 3일 파견근무 나가면 휴가 가는 기분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방 근무를 휴가 가는 곳, 즉 '아주 편한 근무지'로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강원도 전방 15사단에서 근무한 철구가 "전방에서는 그런 것(제설작업하면서 각 잡는 것) 다 한다."고 응수했다. 나도 "전방에서 그런 것은 기본"이라고 철구를 거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 대령이 "군대 이야기 좀 그만하자."며 이 틈을 이용해 화장실로 나가버렸다. 김 대령이 나간 후 용태가 "군대 안간 사람은 몰라도 군대갔다 온 사람들은 군대 이야기가 재미있다"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카츄사' 근무할 때 사격 후 자신도 모르게 총알을 호주머니에 넣고 내무반에 가져와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다시 돌아온 김 대령이 "아직도 군대 이야기 하느냐."고 따지듯 말했다. 현역 군인인 친구에겐 군대 이야기가 지겨운 모양이다.

 

김 대령은 이번 승진과 함께 이달 중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2년 후 귀국하면 연대장으로 부임할 것이라고 했다. 신청 1순위가 강원도 21사단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인연인가. 21사단은 23년 전 바로 내가 입대해서 3년간 근무했던 곳이다. 이곳을 신청한 이유는 강원도 전방에서 근무해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너는 21사단으로 치면 내 후배되는 셈"이라며 "행군의 아침은 필독서로 꼭 읽어봐야 되겠다"고 말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의 고충을 잘 모르므로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꼭 다 읽어 볼 것"이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 25년의 세월 동안 단 한번의 소식도 나누지 못한 깜깜무소식의 친구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나는 친구들. 갑자기 이름은 생각나지 않고…. 대화를 나누다가 튀어나온 최창규, 최상섭, 우동정, 송유섭, 이승규 등등. 우연히도 김 대령이 최창규를 부산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창규가 연락을 해와서 만났는데, 고교시절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해있더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직업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확 바꿔놓은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김 대령한테 그의 연락처를 받아 내 핸드폰에 입력했다. 궁금한 친구다.  

 

새벽 1시 30분경,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안들어 오고 밖에서 뭘 하냐고. 내가 고교 동기모임이 있다고 미리 말했지만, 이렇게 늦게 귀가하지 않자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5년만에 만난 친구들을 앞에 두고 혼자만 살짝 빠져나올 수 없는 일이다. 아내한테 조금 바가지를 긁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 때 한 친구가 "너무 늦었다."며 해산하자고 말했다. 분위기가 다 헤어지는 쪽으로 정리됐다. 김 대령이 "축하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맙다"며 "2년 후에 보자"고 말했다. 모두 박수를 치고 의미있는 모임을 종료했다. 좋은 일로 고교 친구들을 만나 더욱 반갑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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