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최근 '왕의 남자' 주제곡으로 인기를 모은 이선희 씨의 1980년대 노래이다.
푸른 제복을 입었던 젊은 시절, 이 노래에 대한 사연이 남다르게 깊다. 그 때는 거의 매일 이 노래를 들으며 가슴을 열어 젖히고 세상을 잊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과 허공을 가르는 우렁찬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 날의 긴 향수를 달랬다.
철책 앞에서 DMZ를 가로 질러 북녁땅을 바라보는 필자
동부지역 최전방에서 GOP와 DMZ를 밤낮으로 지키던 그 때 그 시절.
북방 한계선에 대형 스피커를 수십개나 달아 놓고 대남 심리전 방송에 열을 올리던 북한 인민군에 맞서 아군은 최신 인기가요를 틀어주었다. 휴전선 너머 DMZ를 지나 북한 경계초소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회에 대한 아련한 미련과 추억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가요 방송 덕분이었다.
다른 가요들도 많이 들었지만, 유달리 이 노래가 기억에 남는 것은 '아, 옛날이여'라는 다섯글자가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아, 옛날이여!'라고 외치는 그녀의 맑고 높은 음색은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해 주었다. 마치 동해의 어느 해변에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듯 가로 막힌 철책선과 DMZ가 허공 속으로 산산히 부서져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가사는 자세히 알 필요가 없었다. 알아도 따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이선희 씨의 가창력을 나같은 음치가 절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난 바로 '고음불가' 그룹의 원조 격이다.
당시 휴전선에 근무하면서 썼던 글 하나를 추억으로 옮겨보고자 한다.
-DMZ를 바라보며-
밤에는
초롱초롱한 별빛이
때로는 잔뜩 드리워진 먹구름이
낮에는
우거진 수풀이
더 넓게는 굽이치는 산하가
매일같이 우리를 마주한다.
고독, 외로움, 비, 안개, 햇살, 달, 구름,
방책선, M60 기관총, M16 소총, 수류탄,
지뢰, 신호탄 등등….
매일 우리는 자신과 무한한 싸움을 한다.
가장 큰 적은 고독이라는 소외감.
누가 나의 마음을 알며
누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리오.
고독과의 싸움!
찾아주는 이 없고
반겨주는 이 없는
철책선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물욕과 번뇌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간다.
가리라! 가리라!
내 심장이 박동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을 가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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