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주방의 한쪽 천정의 벽지에 얼룩이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정 아래 벽지에 검은색 점이 하나 보였다. 왜 검은색 점이 생긴 걸까하고 궁금했다. 며칠 지나면서, 그 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검은색 점의 개수도 하나, 둘, 셋 넷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천정과 벽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또, 일주일쯤 지나자 검은색 점은 아이의 손바닥 만큼 커졌다. 새로 생긴 다른 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벽 하나가 원 모양의 검은색 얼룩으로 징그럽게 변했다.
마침내 물티슈를 가져와서 얼룩을 닦아내려고 시도했다. 물기에 벽지가 벗겨졌다. 아이쿠! 벽지가 벗겨진 시멘트 벽면에 검은색 곰팡이가 짠득 숨어있었다. 그동안 습기를 머금은 곰팡이가 벽지를 뚫고 주방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설마 곰팡이가 벽지를 뚫고 나올 줄이야, 상상을 못했다. 그동안 벽지에 생겼던 검은 점은 곰팡이였던 것이다. 시력이 나빠서 물티슈로 닦기전 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얼룩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곰팡이가 생긴 벽은 욕실과 접하고 있어서 혹시 내부에서 물이 샌 것은 아닌지 우려됐다. 관리실에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수도 담당하시는 분이 와서 욕실의 천정을 살펴보고 윗집의 누수 여부를 조사했다. 최종적으로, 아래집과 윗집의 중간 지점, 즉 공유지역의 하수관이 낡아 물이 샜다고 했다. 이럴 경우 수리비용은 우리집도 아니고, 윗집도 아니고, 관리실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건 벌써 2년이 지났다. 얼마남지 않은 연말을 보내면, 3년째 곰팡이와 살아야할 형편이었다. 가장의 책무를 해를 넘겨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해로운 곰팡이를 연내에는 반드시 제거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관리실에서 신속하게 벽지 보수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다. 한두 달 전부터 평소와 달리 3~4일 간격으로 관리실을 방문해 "언제 보수공사를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관리소장은 "공사업자가 정해졌다"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지정 업체 대표와 전화를 통해 방문 약속시간을 정하고, 공사 일정을 잡았다. 나는 추가적으로 새 벽지를 붙이기 전에 곰팡이 제거제를 반드시 칠해달라고 요청했다. 2년여 동안 꿈쩍도 없이 잠잠했던 벽지 공사가 갑자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벽지 도배공사는 아주 깨끗하게 마무리 됐다. 주방은 다시 밝고 상쾌해졌다. 한편으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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