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는 출판 만화의 전성시대였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빌려와서 보면 찢어진 부분이 많았다.
그 장면이 궁금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네에서 돌려보는 것도 유행이었다. 한번 빌려오면 서로 돌려보기 일쑤였다.
소년 시절 만화가의 꿈을 키웠던 어떤 분의 이야기다.
이 분에 따르면 만화방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장면이 나오면 침을 묻혀 찢어서 손으로 구겨서 가방속에 넣어가지고 집에 가져갔다고 했다. 집에 가면 다리미로 다려 구겨진 그림을 깨끗이 폈다고 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림이 너무 좋아 죄 의식 없이 수확한 것이다. 그걸 보고 만화 창작 기술을 연습하고 배웠다고 했다.
심지어는 아주 마음에 드는 장면이 많은 만화는 집으로 대여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을 찢어서 챙기고선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고 했다. 친구가 보고 대여기간 마감날까지 만화방에 대신 갖다주도록 부탁했다. 만화가게 주인은 일일이 챙겨보지 않기에 별탈 없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이 찢어 챙기는 바람에 마음이 캥겼던 것이다.
그런데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빌려보는 사람들이 페이지가 많이 빠졌다며 항의하는 일이 잦아지자, 주인도 언제부턴가 외부로 빌려준 책이 돌아올 때면 꼭 페이지를 넘겨서 훼손된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 친구가 멋 모르고 갖다주는데 주인에게 딱 걸렸다.
주인이 책장을 술술 넘겨보고선 정색을 하고 물었다.
"이 책 빌려줄 땐 멀쩡했는데, 왜 이렇게 중간 중간에 찢어져 없으진 알장이 많지?"
"제 친구가 저보고 보라고 해서 봤는데 처음부터 그랬는데요." 친구는 당황하며 이야기 했다.
"이 책 빌려간 사람이 너 아니냐, 그럼 그 친구 어딨어. 다음에 데리고 와!"
이 분은 친구로 부터 만화가게 주인의 호출 연락을 받고 며칠 후 만화가게를 찾아갔다.
주인은 "자네, 이 만화책 빌려가서 어떻게 한 건가? 왜 책에 없어진 데가 많지."
주인의 불호령에 올 것이 왔구나 하고 긴장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니 너무 겁이 났다.
집이 가난하여 책을 변상할 여력도 없었다. 시치미를 떼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말이다.
주인도 중학생 데리고 이것저것 따질 처지도 아니었다.
책을 빌려줄 때 미리 확인시키고 다짐이라도 해뒀으면 모를까,
온전한 책을 빌려줬는지도 확신이 안섰던 것이다.
당시 만화를 보다보면 종이가 떨어져 나간 부분이 꼭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돈 내고 만화책 빌려보는 사람에겐 짜증날 일이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시골에서야 종이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만화책을 화장지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림 욕심에 만화책의 낱장을 떼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웃으면서 소줏잔에 추억처럼 담아서 고백하는 것이다.
남의 밭에서 수박이나, 참외 서리를 재미로 예사로이 했던 그 시절,
그런 서리에 비하면 만화책 낱장 도둑은 도선생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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