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을 잇는 경의선의 한 역사인 도라산역을 다녀왔다.
역사 옆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도라산 역사 앞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현대식으로, 예술미를 가미한 듯한 웅장한 역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이든, 실향민이든, 어떤 목적의 방문객이든 누구든 와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다면 쓸쓸할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외로울 것이다.
도라산역이 생긴 것은 누군가를 맞이하고, 누군가를 보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남쪽 사람은 북으로…, 북쪽 사람은 남으로….
마침내 도라산역 입구.
흰색으로 쓴 '도라산역'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는 한자와 영문 표기도 곁들여 있었다.
입구 맞은 편에는 헌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우리 일행외에는 외부 방문객들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철도 파업으로 하루 3번 다니는 기차가 끊어졌으니 누가 올 수 있겠는가.
나야 도라산역에서 열린 '쌀은행발기인대회'에 참석한 관계로,
주최측이 부랴부랴 마련한 관광버스로 오게 된 것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또 헌병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DMZ 안에 있는 역사이다보니 경비가 삼엄했다.
내가 받은 느낌은 꼭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가 기차 타는 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점잖게 못들어간다고 했다.
기차가 안다니니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말아야지.
꿩 대신 닭이라고, 역사 안 매표소와 타는 곳 입구를 둘러보았다.
타는 곳은 '평양방면'이라고 씌어있었다.
좋아, 사진은 찍어도 되냐?
그건 가능하단다.
그래서 타는 곳 입구를 한 컷 찍고, 또 기념으로 헌병과 같이 하나 찎었다.
내가 포즈를 취할 때는 여 하사관이 찍사 역할을 했다. 내가 부탁했거든.
이왕 부탁하는 김에 하나 더 부탁했다.
내 독사진….
평양 - 서울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그림을 배경으로 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언제 도라산역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까.
더 멀리는 신의주까지 달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니 더 멀리는 모스크바와 유럽 대륙까지
갈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5년 후든, 10년 후든, 100년 후든….
저기 도라산역 승강장.
언젠가 저 곳에 줄이어 선 사람들이 개성으로, 평양으로, 신의주로 갈 것이다.
아직은 서울에서, 임진각에서 이 곳까지 올 수 있지만.
이날 방문 목적의 하이라이트.
쌀은행발기인 대회에 참석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참석해 격려말씀을 해 주고,
박근삼 시인이 경의선 시를 낭송하고,
…
쌀은행발기인대회는 이렇게 끝이났다.
3월 3일,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도라산역 주변은 싸늘했다.
찬바람에 공허감마저 감돌았다.
한편에서는 기중기와 건설 중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그런 느낌은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도라산역은 단절된 허리, DMZ에 조금씩 새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양 미니동창회에서 (0) | 2006.06.08 |
---|---|
달마선원의 청광스님을 뵙다. (1) | 2006.04.28 |
덕산포럼을 만들다. (0) | 2006.03.31 |
블로그 기자단에 신청하고… (0) | 2006.03.10 |
겨울 결혼식 (0) | 2006.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