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의 가장 큰 이슈는 사행성 성인오락실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누가 로비를
했다느니, 누가 얼마를 벌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연일 모든 미디어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인 하나가 그 성인 게임장에서 멀쩡한 사업체 하나를 쏟아 부은것도 모자라 온 집안 재산을 그곳에서 탕진한 경우를 본적이 있으므로 그곳의 중독성과 위험성은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도되는 내용처럼 한 달에 한 업장에서 수 억 원씩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피눈물을 흘렸을 지를 생각하면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업소 이름 중 가장 자주 나오는 브랜드는 단연 ‘바다이야기’ 입니다. 아마 슬롯머신의 기계의 모양과 비슷하지만 별이나, 세분 또는 과일이 아니라 바다의 생물들로 아이템이 채워져 있어 ‘바다이야기’라고 이름 붙여진 것 같습니다.
[바다이야기] 이름만으로는 얼마나 낭만적인 말입니까?
도심생활에 지친 이들이 휴식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바다일 것입니다. 그래서 휴가철 때 가장 인기가 있는 휴양지는 바다를 가진 해변이며 더 나아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놀이와 낚시를 즐기는 즐거움이 큰 인기입니다.
외국에서도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요트를 갖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며 가장 고급여행도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크루즈 여행입니다.
저는 그 바다이야기를 보도로 접하면서 진짜 ‘바다이야기’를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바로 진정한 ‘바다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 소품이지만 기운생동하며 이해하기 쉬워 보이면서도 무언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결국 화가의 삶과 연결하여 보면 너무나 감동적인 그림.
바로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선유도] 라는 그림입니다.
<선유도 船遊圖> 심사정, 1764년, 종이에 수묵 담채, 27 cm × 39.5 cm, 개인 소장
먼저 그림을 좀 감상해 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종이에 은은한 담채로 그려졌는데 보는 순간 용솟음치는 거친 파도로 인해 화면 밖으로 물방울이 튀어 오를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거친 바다와 어울리는 먹구름이 어지럽게 덮여 있고 그 하늘과 바다 사이에 조그만 배가 한 척 있습니다.
하지만 두 거칠음 사이에 있는 작은 배는 이상할 만큼 평정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평정과 어울리지 않게 노 젓는 사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으며 그와 반대로 왼쪽 위에는 두 선비가 조금의 동요도 나타내지 않은 채 느긋하게 파도를 감상하며 뱃전에 기대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물놀이를 즐기는 선비의 고고한 모습을 통해 문기가 물씬 풍기는 흔한 문인화로 보이지만 거친 파도와 평온한 배, 힘겨운 사공과 느긋한 선비들, 폭풍이 몰아칠듯한 구름과 그 아래
묵은 매화나무와 고고한 학, 이러한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금은 불편하게
하는데 그러한 불편함이 이 그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 할 것입니다.
두 보 (杜 甫)의 시에 "물 하나 그리는 데 열흘, 돌
하나 그리는 데 닷새(十日畵一水 五日畵一石 십일화일수 오일화일석)." 라는 구절이 있듯이 물을 소재로 한 그림은 보기에는
쉬워도 직접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한 물 중에서도 거친 바다를 생동감 있게 그리면서도
결코 위협적이지 않게 그려낸 것을 보면 역시 심사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구도를 살펴보아도 단순하게 보이지만 4개의 시선이 교묘하게 교차하며 소품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뱃머리의 선비의 전방을 향한 수평의 시선,
뒤 선비는 먼 허공을 향하는 상승의 시선. 그리고 등을 보이고 있는 사공은 삿대를 따라서
물을 내려다보는 하강의 시선, 마지막으로 나무 위에서 배를 내려다보고 있는 학의 시선. 이러한 4개의 시선이 수평과 상하로 향하면서 화폭을 넘어 공간을
중층적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시선은 하늘을 보는 선비의 시선, 즉 물의 용솟음치는
기운은 배로 전해지고 그 기운은 돛대의 역할로 보이는 고매를 통해 하늘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선비의 하늘로 향한 시선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과 또 하나는 학의 시선인데 학은 배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움직임을 관조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하는 시선을 다시 배 안으로
통합시키며 확산과 수렴의 긴장된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이나믹한 구성력과 노련한 설색 그리고 서정적 장치로 등장한 화병에 꽂힌 꽃 가지,
멋들어지게 휜 한 그루 고매, 고고한 학 한 마리,
그리고 두 꾸러미의 서책 등이 그림의 낭만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배 위의 매화나무와 학은 배를 타고 있는 선비 중 한 사람이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임포는 평생 처자도 없이 항주의 고산에 혼자 은거했던 시인으로 초당 주위에 365그루 매화를 심어놓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매화 아내에 학 아들(梅妻鶴子)'을 가졌다고 말하곤 하였답니다.
따라서 학과 고매는 화가가 속세의 더러움을 피해 은거를 열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낭만적인
장치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낭만성은 도무지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배위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품들로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해주는
도구입니다. 다시 말해 현실적이지 않은 몽환적인 장치들입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왜 이렇게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림 오른쪽 상단을 보면 '갑신신추사(甲申新秋寫)' 라는 간기의 갑신(甲申)은 1764년에 해당하므로 그가
57세 때 그린 그림으로 비교적 만년 작임을 알 수 있는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이 이러한 비현실적인 그림을 도대체 왜
그렸을까요?
역시 이 작품도 화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심사정은 매우 불우한 화가였습니다. 증조부
글을 배운 사대부가 자손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는 현실과 영원히 재기가 불가능한 가문의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던 심사정의
삶이 그 얼마나 눈물겨웠겠습니까?
그러한 현실이 어릴 적 겸 재 정선 밑에서 그림을 배웠으면서도 정선의 화풍을 따라가기 보다는 보다 깊은 내면의 모습에
천착하게 만드는 남종문인화의 대가로 성장하게 만든 요인은 아니었을까요?
심사정의 눈물 나게 불우한 삶에 대해서는 나중에 심사정의 대표작을 소개할 때 다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그의 묘지명에 쓰여진 글을 보면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50년 동안 걱정으로 지새며 낙이라곤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 가운데서도 하루도 붓을 쥐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몸이 불편하여 보기 딱할 때에도 물감을 다루면서 궁핍하고 천대받는 쓰라림이나
모욕 받는 부끄러움을 염두해두지 않았다….현재거사가 이미 세상을 떠났건만 집이 가난하여 시신을
염하지도 못했다…..애달프다. 뒷사람들이여 이 무덤을
훼손하지 말지어다. “
죽었어도 염도 하지 못할 만큼 가난하였다니 그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지요?
그러한 불우한 심사정은 자신의 끝없는 천형을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삶 속에서 자신을 지탱케 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거친 바다는 현재가 평생 피할 수도, 벗어 날수도 없는 자신의 힘겨운 현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현실에 무서워 벌벌 떨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파도를 무심히 쳐다보듯이 묵묵히 감내하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로 이러한 현실을 이겨내고자 저 힘겹게 노를 저어가는 사공의 모습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붓을 잡았던 것입니다.
언젠가 그러한 그의 노력을 결실을 맺어 저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훌쩍 이 고단한 배위를
떠나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그림입니다.
그림만이 그를 세속의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 탈속한 선비의 모습으로 은일하는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유도> 는
자신의 불행한 삶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는 가난한 예술가 심사정의 외로우며 처절한 예술혼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그림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수작인 것입니다.
얼마 전 집에서 가족들과 뉴스를 보던 중 초등학생인 우리 집 꼬마가 저에게 ‘바다이야기’가 뭐냐고 물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하였고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오래하면 좋지 않다고 말해주던 아이들에게 [바다이야기]가 컴퓨터를 이용한 도박성 게임이란 말을, 그로 인해 가정이
파탄되고 심지어 자살하는 어른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찌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음에 혹시 또 아이들에게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말없이 이 그림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바다이야기]란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거나 그냥 휩쓸며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을 쉼 없이 단련시키면서 평생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 바다와 함께 때론 힘겹게 때론 행복하게 때론 거칠게 때론 평화롭게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하고 소박한 이야기라고 말입니다.
2006 . 9 . 5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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