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휴지조각을 4천원에 산다고...

투광등 2006. 7.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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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내가 거래하는 모 증권사에서 전화가 왔다.

휴지조각으로만 알고 있던 주식을 어느 증권사 창구에서 1주당 3천원에 매수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7월 언제까지 그 증권사에 계좌를 튼 후 팔면 된다고 했다. 물론 팔든지 말든지는 내가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매우 궁즘해졌다. 지난 해 3월 상장폐지 종목으로 지정돼 거래가 중지된 주식을 지금 누가 산단 말인가. 그것도 거래 중단 당시 종가보다 20% 이상 프리미엄(?)을 얹어서 사겠다고 하니 꽤 궁금해졌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종목 이름을 치자 이미 뉴스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기사 내용은 2개의 투자 회사가 컨소시움을 형성해 3천원에 공개매수한다는 것이었다. 증권 전문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이 종목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게시판에 개미 주주들의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었다. 3천원은 너무 싸다느니, 5천원에 판다느니, 또 자신의 연락처까지 기재해 10만주를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이 갑작스런 사건으로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여태껏 휴지로 생각했던 주식을 1주당 3천원에 팔아 조금이나마 이익을 실현할 것인가 여부였다. 아니면 기다렸다가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년 이상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또 1년 못기다리겠느냐는 것이다. 다 팔아봤자 큰 액수도 아니므로 껌 사먹은 셈 치고 묵혀 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 친구의 조언이라도 구해보자. 주식에 일가견이 있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친구는 벌써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다. 현재 상폐종목이긴 하지만 자산가치가 많아 다른 투자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또 다른 회사에서도 이 종목 주식을 사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주식 가치가 더 오를 것 같다고 친구는 덧붙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잊어버렸다. 사실 몇십주 있는 것 다 팔아봤자 얼마나 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정말 친구의 말대로 1천원을 더 올려 4천원에 공개매수하겠다는 회사가 나왔다. 드디어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증권전문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난리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처럼 휴지로 생각했던 개미 주주들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었다. 이 주식은 최소한 5천원, 아니 7천원, 아니 1만원은 돼야 팔겠다는 개미들이 속출했다. 장외시장에서는 5천원에 거래된다는 글도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차피 상폐될 종목이므로 4천원 주겠다고 할 때 파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글도 보였다.

 

그리고 오늘.

거래하는 증권사에서 또 전화가 왔다. 처음 3천원에 매수하겠다던 컨소시움에서 4천원으로 올려 사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후발 경쟁사가 4천원에 사겠다고 했으니 최소한 그 가격대는 맞춰져야 주식을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수급의 원리는 기본이 아닌가.

 

나는 냉정한 자세로 최소 4천원에 판다는 것을 감안해 손익을 계산해보기로 했다. 현재가(거래중지 당시 종가)가 2,365원이므로 4천원에 팔면 주당 1,635원의 이익이 생긴다. 상폐를 가정한다면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게 4천원의 황금알을 굴려주는 셈이 된다. 하지만 매입가가 주당 9천원이 넘으니 4천원에 팔아본들 마이너스 55%에 가까운 수익율이다. 지난 날 나의 주식 성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되돌아보니 증권 계좌를 개설한지 18년은 된 것 같다. 그동안 투자한 돈은 아마도 꽤 될 것이다. 회사 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을 쏟아부은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17,000원짜리 주식이 어느날 휴지조각이 된 것도 있다. 정리매매 때 몇백원에라도 팔았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나니 정말 휴지가 된 것이다. 깡통이 뭔지 몰랐으나 깡통을 차고 보니 깡통의 진실과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몇번의 깡통에 실망한 나머지 오랫동안 주식을 멀리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이맘 때쯤 어느 날 증권계좌를 보니 100만원 가까운 잔고가 있었다. 재작년 바닥을 쳤던 주식이 크게 올라 수익률이 몇십%나 증가했던 게 그 이유였다. 작년 12월까지 주식은 광적으로 올랐다.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니까. 나도 100만원짜리 계좌가 아주 일시적이었지만, 어떤 날은 400만원까지 가기도 했다. 백만원으로 조만간 5백만원, 좀 더 지나면 1,000만원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배팅을 세게했다. 소위 미수를 쓰고, 물타기를 하고, 추격매수를 하고,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그리고 올해 1월이 되자 고공행진하던 주가는 거품 빠지듯 폭삭 빠졌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수익률도 빠지고, 드디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젠 오르겠지 하고 또 물타기에 미수를 감행하고, 반대매매 당하지 않으려고 손절매하고, 그나마 손절매도 못해서 다음날 반대매매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작년 이맘 때 계좌 잔고 100만원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또 불명예스런 깡통을 찬 것이다. 

그런데 휴지조각인 줄 알았던 주식이 되살아나서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나를 씨드머니로 삼아 다시 도전해보세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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