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새벽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 나갔다. 일주일간 모아두었던 종이 박스와 음료캔, 비닐, 플라스틱 등을 들고나가는데, 현관에 길이가 긴 큰 박스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온 소포였다.
이런 것을 뜯지 않고 한동안 내버려 두는 사람은 가족 중에 아이들밖에 없다. 이날 박스를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일주일간 현관에서 공간을 차지할 게 뻔했다. 소포 주인을 찾았더니 아들이었다.
아들은 컴퓨터에 열중이었다. 물건을 꺼내고 박스를 버리자고 했더니, 아들은 안 오고 아내가 달려왔다. 아내는 커터 칼을 챙겨 와서 비닐테이프를 뗐다. 그리고 물건을 꺼내 아들에게 갖다 주었다. 만일 나한테 온 소포였다면, "당신이 물건 꺼내야지 누구한테 시키냐?"고 잔소리를 했을 게 뻔하다. 아들이 해야 할 일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수 와서 한다.
아내가 분리해 준 아들의 소포 박스까지 들고 문밖으로 나오면서, 문득 이런 의구심이 생겼다. 아들과 엄마의 관계는 어느 가정이나 이런 식일까? 우리 집만 그런 걸까.
우리 집의 권력 순위를 따지면, 내가 맨 꼴찌다. 가족 모두가 인정한다. 옛날 가부장제 같으면 당연히 1위는 내 차지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집안 서열이 거꾸로 됐다. 여성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집에 애완동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애완동물이 있었다면 나는 그 동물보다 못한 처지로 내몰렸을 가능성이 크다. 한 지인이 "나는 우리 집에서 개보다 서열이 낮다"고 했던 말을 농처럼 크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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