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감에 대하여

투광등 2024. 11. 2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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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을 맞아 지인들의 SNS에 감에 관한 사진과 글이 자주 보인다. 주로 단감, 대봉, 곶감, 홍시, 감말랭이, 감식초 등 눈에 익은 단어가 많다. '감 퓌레'라는 처음 보는 단어도 있었다. 프랑스어
'퓌레(purée)'에서 따온 말이었다. 감 퓌레란 홍시를 부드럽게 갈아서 만든 걸쭉한 홍시즙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감퓌레를 김장 김치에 설탕 대신 넣어서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는 지인도 있었다. 감이 다양하게 식용 과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과일나무는 감나무였다. 담장 안과 대문 밖에 네댓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는데, 감 종류가 달랐다. 대봉이라 부르는 왕감, 곶감을 만들던 물감, 홍시가 아주 맛있었던 월이감, 단감처럼 납작하지만 홍시가 맛있었던 반소감 등의 나무가 각각 있었다. 이 나무들은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소외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봉나무 두 그루만 시골집을 지키고 있다.

최근 한 지인이 수년 전 시골 빈집에서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보고 찍은 사진이라며 아름다웠다는 소회를 밝혔다. 또 어떤 지인은 "사람들이 구경하라고 주인이 감을 따지 않았다"며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라고 했다.

관점의 차이인데,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하나둘씩 빨갛게 익어가는 풍경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감나무 주인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정말로 사람들 구경하라고 감을 따지 않고 내버려 두는 농부는 없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농부가 아니다.

농가에서 감은 고급식품으로 통한다. 감을 따지 못하고 내버려 두는 경우는 딸 사람이 없거나, 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사람들 구경하라고 감을 남겨놓는 일은 없다. 농가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게으름뱅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어릴 때 어른들은 그런 얘기를 하곤 했다. 아파서 병원 갈 정도가 아니라면, 밭농사든, 논농사든, 감농사든 다 제철에 마치는 것이 농부들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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