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고 상암 서석재 전 장관의 49재

투광등 2010. 2. 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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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숙환으로 타계한 고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49재가 2010년 2월 1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렸다. 하늘도 고인을 추모하는 듯 온종일 눈을 뿌렸다. 고인이 별세한 지난해 12월 26일에도 눈이 내렸고, 발인날에도 눈이 내렸다. 어쩌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서 전 장관의 49재는 유족을 비롯해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박관용 전 국회의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이종혁 의원과 과거 민주화 동지, 일반인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의식은 사대부중의 대령관욕, 사대부중의 상단불공, 사대부중의 신중퇴공,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큰스님의 영가법문과 김덕룡 대통령특보의 조사, 김장실 예술의 전당 사장의 약력소개, 조계사 합창단의 조가, 조계사 다도반의 헌다, 조계사 무용단의 진혼무, 내빈의 헌화 순으로 진행됐으며, 이어 사대부중의 제사, 봉송 및 소전으로 마무리됐다.  

 

서 전 장관과 함께 민주화에 헌신해왔던 김덕룡 특보는 조사에서 "당신께서는 몸집이 작았으나 언제나 당당했고, 맡은 일마다 당차게 이루어 냈다"면서 "나라의 민주화와 불교의 흥왕을 위하여, 당신께서는 꽃이 되면 꽃으로 오시고, 바람이 불면 바람으로 오셔서 언제나 이나라, 이 백성 그리고 2천만 불자와 함께 할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큰 인물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 달인 12월에 서 전 장관이 돌아가셨다. 서 전 장관은 대통령이나 추기경이라는 아주 높은 자리에 가지 않았지만, 서민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항상 낮은 곳에서 겸손하고, 마음이 여리고 순백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5선 정치 이력에 큰 상처를 준 동해보선 후보매수 사건도 뒤집어놓고 보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억울했던 감정과 모진 시절을 모두 극복해내고, 독실한 불교신자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인간 서석재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라 할 것이다. 

 

지관 큰스님이 이날 영가법문을 통해 말했듯이 고인은 계절마다 바꿔있는 옷과 같은 육신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불멸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한 측근의 말에 따르면 서 전 장관은 노환으로 병마와 싸우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재산이라도 좀 모아둘 걸…."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재산을 모으지 않았던 것이다. 동해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왔을 때, 그 때까지 전세와 월세로 전전했던 그에게 갑자기 집이 한채 생겼는데, '야당 사무총장이 집도 없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영원한 촌놈'이자 선비였다. 그는 세월에 따라 바람과 함께 떠나 갔지만,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영원한 촌놈'은 영원히 역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고 서석재 전장관의 49재를 알리는 조계사 입구 현수막>

 

<지관 큰스님의 영가법문>

 

<영정>

  

<헌다식>

  

<헌다식>

         

<진혼무>

 

<진혼무> 

 

<진혼무> 

  

<진혼무> 

 

<대웅전 추모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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