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후사(先家後社)'는 천륜의 도리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주말에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무엇보다 가족행사가 이틀 연속 짜여있어 신경이 쓰였다. 가족 모임에는 아무리 바빠도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 주는 것이 천륜의 도리다. 이런 생각을 갖기까지 약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젊었을 때는 회사일이 먼저라며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당연시하였는데, 나이 들고 보니 그게 후회스러울 때가 있었다. 집안일을 우선시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있고 가정이 있어야, 사회가 있고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살면서 집안일, 특히 아이들의 학업과 장래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데, 나의 소신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인생의 멘토가 돼주어야 했는데, 그걸 거의 하지 못했다.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맡겼다.
지금까지 성취도로 볼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기사 요즘 아이들은 부모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조언했다고 자식들이 다 들었을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내 말을 잘 따랐더라도 더 잘됐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하는 말은 한낱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어떤 조언도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고 만다.
되돌아보면, 내가 20대 청춘이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 그리고 아들, 딸자식들의 시대는 먹고사는 환경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급변했다. 부모와 자녀의 세대는 너무 빠르게 문화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에 부모가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꼰대 짓이 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멘토 역할을 하지 못한 부모로서 변명이거나 자기 합리화인지도 모르겠다.
청춘을 지나 40, 50대 때는 정말 회사가 나의 전부인양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에게 투자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공무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무슨 공무가 있다고 그렇게 회사일에 매달렸는지 말이다. 보수도, 보상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회사였으니 스스로도 할말이 없다.
이 참에 선가후사(先家後社)라는 말을 꼭 만들고 싶다. 집안일을 먼저 하고, 다음에 회사일을 하라는 뜻이다. 집안이 편해야 회사일도 잘할 수 있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작지만 가장 강력한 구심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