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덕산포럼을 만들다.

투광등 2006. 3. 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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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덕산(德山포럼)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십년 넘게 알고 지내는 이상운 선배님이 이 곳으로 내가 출판한 '행군의 아침' 10여권을 갖고 나오라고 하여 대선배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날 모임에는 이강혁 전 외국어대학교 총장을 비롯하여 박기윤 포커스 편집위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대부분 외대 정외과 출신이었는데, 불어과 출신 선배는 한 분 계셨다. 저녁 식사를 거의 마치고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덕산포럼'의 사무총장을 맡게 된 이상운 선배님은 "우리 사회에 정이 너무 메말라 간다"면서 "모임 이름을 덕산포럼으로 명명한 것은 덕을 산처럼 쌓아서 세상에 베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 모두 그 뜻에 공감을 표시하고, 만장일치로 덕산포럼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선배님은 모임 이름이 가결될 후에 "덕산은 사실 이강혁 전 총장님의 아호와 같다"면서 이 총장님의 양해를 구했다.

 

이 모임에는 정외과 출신의 여성 선배님 한 분이 들렀다가 가셨는데, 당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2차례 출마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앞으로도 계속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왜 정당을 선택하지 않느냐"고 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노당 등 기존 정당들은 나의 개혁정책과 상당히 달라서 정당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선배는 자신의 경력과 정책을 알리는 미니 책자를 한부씩 나눠주었다. 색다른 모습이었다.

 

이날 모임에서 특히 반가웠던 분은 박기윤 선배님이셨다. 약 6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이 모임에서 뜻밖에도 만난 것이다. 서로 얼굴을 못알아 보다가 한 참 후에 박 선배님이 나를 보고 "혹시 심평보 아니냐?"고 말해 그 때서야 서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박 선배님은 광화문 뒷편에 사무실이 있다며 이 쪽에 나오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반갑게 대해 주셨다. 6년 전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시절이 갑자기 추억처럼 되살아나 기분이 좋았다.

 

선배님들은 2차 맥주를 드시러 가고, 나는 헤어졌다. 같이 가자고 하는 걸 겨우 뿌리쳤다. 10년 이상 차이나는 선배님들의 술자리 모임에까지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며칠 뒤 이상운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덕산포럼 사무실을 곧 개소할 것이라고…. 덕산포험이 잘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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