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아들의 일기

투광등 2006. 11. 2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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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데 거실에서 아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호기심 많은 딸 아이가 아내한테 달려갔다. "엄마 왜? 왜 그래?'

딸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보챘다. 왜 혼자서 크게 웃냐고.

아내는 대답 대신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도 궁금해졌다. "당신, 밤에 왜 그렇게 시끄럽게 웃어! 무슨 일인데!"

 

아내가 나를 보고 말했다.

"보해마트가 짱입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보해마트는 집 근처에 있는 할인점이다. 평소 가끔 이용하는 곳이다.

보해마트가 짱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아들이 오늘 일기 쓴 거예요." 

"...."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일기라니...

"당신 아들이 오늘 '보해마트가 짱입니다.'라고 한 문장만 썼다구요." 하고 아내가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들 녀석을 불러 "야이 놈아, 보해마트가 짱이면 그 이유도 써야지."하고 다그쳤다. 이 놈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옆방으로 도망쳤다. 녀석이 한심하기도 하면서 일기를 억지로 쓰자니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경고만 하는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에는 그 이유도 써야 돼, 알았지."

 

건데 이 녀석의 한 문장 일기가 처음이 아니란다. 아내에 따르면 일기장에 한 문장만 쓰다가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것이다. 그 후론 며칠간 두세 문장씩 쓰더니 오늘 또 한 문장만 써놓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처음으로 아들의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아들의 일기장에 과연 한 문장만 있는 일기가 얼마나 될까 하고 궁금해진 것이다. 날짜는 건너뛰는 부분이 많은데, 한 문장으로 된 일기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아내가 웃었던 보해마트 짱입니다라는 일기가 보였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보해마트에 갔다. 거기서 초콜릿과 요플레, 삼겹살을 샀다. 쌈도 계산을 하니까 23,000원이다. 집에 가서 초콜릿 먹고 요플레 먹고 쌈과 삼겹살, 밥을 먹었다. 많이 맛있었다. 보해마트 짱입니다. 끝.'

 

그런데 아내가 크게 웃었던 대목인 '보해마트 짱입니다'는 글 위로는 연필로 가위표가 되어 있었다. 지우개로 지우지 않고 연필로 지운 것이다. 지우기 싫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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