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추석
추석을 맞아 고향에 다녀왔다.
올해는 아들과 둘이서 가게 됐다. 차표를 끊지 못해 승용차를 몰고 갔다.
연휴 첫날인 12일 0시30분경 서울에서 출발했다. 오전 12시 전에 고향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연휴가 짧아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 진입 때부터 줄을 서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추석연휴 기간인 12일부터 14일까지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여서 더 밀리는 것 같았다.
차가 너무 막히고 졸려서 죽암 휴게소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오전 7시30분경 다시 운전을 시작해 오후 2시30분쯤 시골에 도착했다. 큰 며느리가 못온다고 하자,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나물과 제사상 준비를 하신 것 같았다. 남동생과 사촌 동생들의 제수씨들이 전을 부치고 튀김을 해서 추석 상차림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남동생은 삶아서 꺼내 둔 돼지고기 덩어리를 고양이가 튀어 나와서 입을 댓다고, 개한테 잘라서 주고 있었다. 고양이 때문에 개가 호강한 셈이다.
내년이 팔순이신데, 볼 때마다 몸집이 작아지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련했다. 그래도 아들, 손자 왔다고 반겨주셨다. 어머니가 일찍 제사상 준비를 마친 덕분에 오후를 좀 여유있게 보낼 수 있었다.
아들 녀석은 14시간 동안 차를 타는 바람에 피곤했던지 큰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큰 대자로 뻗어 잤다. 나도 피곤하여 작은 방에서 눈을 붙였다. 평소에는 차를 몰고 가더라도 아내와 나눠서 운전하였기에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차 시간도 길고, 혼자서 하다보니 꽤 힘이 부쳤던 것 같았다.
저녁에 아들놈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여 면 소재지 시장으로 나왔다. 대형 마트에 들러 주방세제와 전구, 선물을 사고, 근처에 있는 치킨 집에서 튀김 닭다리(18,000원)을 샀다. 시골 집까지 약 6km 거리인데 2k 지점을 지나자 아들이 직접 차를 몰아보겠다고 했다. 도로 주행 6시간을 마쳐 운전면허증을 딴지 얼마 안됐기에, 면허증을 딴 후 처음 운전하는 셈이었다. 시골 도로라 한적해서 운전대를 맡겼다. 야간에 약4km 주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 앞에 안착했다. 주차를 길 한쪽으로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냥 대문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마도 30분쯤 후, 아들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아빠 지갑이 없어졌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휴대용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없어졌다는 것이다. 큰 가방과 작은 가방, 방안을 살펴보아도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치킨 사러 나갔다가, 면 소재지 마트나 치킨집에서 흘린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마트와 치킨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9시30분경 마트에 도착했다. 시골이라 문을 닫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영업중이었다. 카운터 판매원에게 물었더니, "지갑을 주워서 맡긴 사람이 없다"면서 "CC 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내일 오후 점장이 나오시면 확인해드리겠다"고 했다. 이어 치킨집으로 갔는데, 거기는 CC TV가 없다고 했다. 대신 낵 결제한 시간 전후로 배달 주문이 몇건 있었는데 혹시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결국 지갑을 못찾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속에는 학생증과 신용카드, 현금 등이 들어 있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소지품 좀 잘 챙겨라. 아빠, 엄마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고...". 그러자 아들놈은 "나는 스트레스 안받아. 몆번 잃어버렸는데, 다 찾았어."라고 대답했다. 정말 스트레스를 안받는 것인지, 능청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물건 좀 잘 간수하고 다녀라"라고 잔소리를 했다. 물건 잃어먹는 게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9월13일(금). 추석날.
오전 8시경 제사상을 차리고, 오전 8시30분쯤 제사를 시작했다. 둘째 삼촌과 숙모님은 국내 여행을 가셔서 참석하지 못했다. 집 사람이 안와서 내심 걱정이 컸는데, 순조롭게 제사를 마쳤다. 집 사람 대신 사촌동생의 제수씨가 상 잡는 역할을 해주었다. 제사가 끝난 후, 나물밥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10시10분경 성묘를 갔다. 시골로 낙향한 선조의 아버지 묘소를 비롯해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 4분과 할머지니, 5촌 큰아버지, 아버지 묘소 등을 들러 절을 올렸다. 산 능선을 따라 크게 나눠서 4군데를 다녔고, 산 꼭대기에도 올라갔다. 성묘를 하는 동안, 4촌 동생들과 가족묘 이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막내 삼촌도 의견을 주셨다.
해가 갈수록, 나이가 들어서인지, 책임감이 커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 추석이라는 명절 기분은 짙은 색깔이 바래지듯 엷어지고, 사라져가는 듯 하다.
삼촌과 숙모님, 사촌동생들과 제수씨, 5촌 조카 등이 모두 떠난 뒤 시골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 빨리 조용해진 것 같았다. 오후에 돌아가신 큰고모님의 딸이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명절 때마다 외가라고 찾아주는 외사촌 여동생 내외가 고마운지 어머니는 손수 만드신 식혜를 내주셨다. 외사촌 여동생 일행이 떠난 후, 그 아들이 식혜를 맛있게 많이 먹더라며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오후 6시경. 고향을 출발했다. 추석 다음날은 처가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승용차 짐칸에 미역 선물이 하나 있었는데, "혹시 미역 드시냐?"고 어미니에게 물었더니, 어머니가 "가영이 엄마(제수씨)가 미역국 잘 끓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미역이 담긴 박스를 꺼내 제수씨에게 전달했다. 잠시 웃음꽃이 피었다.
집을 떠나자, 아들이 말했다. "경찰서는 어디 있어?"
내가 말했다. "거기 마트 근처야."
"너, 운전해볼래?"
"안해~"
오늘 귀경길도 운전은 오롯이 내 담당이 됐다.
먼저 면소재지 파출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파출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민원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분실물인 지갑을 찾으러 왔는데요?"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순경은 인수인계를 못받았다는 듯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오늘 전화를 해서 지갑이 파출소에 있다는 것을 확인을 했다"고 하자, 그 시간 대에 근무한 분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왼쪽 서랍을 열더니, 지갑 하나를 꺼내 들고 "이거 맞느냐"고 했다.
아들이 지갑을 받아서 열어고보는 "맞습니다."라고 했다. "뭐 빠진 것 없느냐"는 순경의 질문에 "없습니다"고 아들이 대답했다.
나는 이 지갑이 누가 언제 파출소에 신고한 것인지 궁금했으나, 순경은 "어제 손님이 길가에서 주웠다면서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갔다"고만 말했다. 고마우신 분이다. 아들이 이 지갑을 찾게 된 것은, 하도 잃어먹으니 지갑 안쪽에 싸인펜으로 핸드폰 번호를 적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새벽 1시경 아들 핸프폰으로 모르는 전화가 왔다고 하길래, 내가 이 번호로 차례가 끝난 후 전화를 걸었더니 파출소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의 분실물이 파출소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귀경길에 파출소에 들러 찾게 된 것이다.
파출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음료수 한박스를 전달했다. 순경은 "이러시면 안됩니다."고 사양했다. 나는 '명절인데 고생하시니 받으시라."고 놔두고 나왔다.
귀경길은 귀성길보다 훨씬 도로 사정이 좋았다. 연이틀 운전대를 잡다보니 체력이 딸려 쉬엄쉬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언제 (집에) 도착하느냐?"고 빨리 가서 쉬고 싶어했다. 그 마음이야 나도 같았다. 그러나 "빨리 가는 것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휴게소에서 두세번 더 쉬면서 갈 것"이라고 대답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