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마일 우체국-1

투광등 2019. 4. 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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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준비를 1년째 하고 있는 조 감독이란 분이 있다. 감독이라는 칭호는 그가 예전에 영화 몇편을 촬영한 영화 촬영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집 근처 호프집을 임대하여 미니 캐릭터 상품샵과 커피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건물 외벽을 페인트로 단장하고, 실내의 주방과 가구 등 인테리어를 완전히 바꾸었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충실했다. 스마일 우체국이라는 컨셉으로, 외부를 단장하고 실내에는 실제 우체통을 만들어 배치했다. 


맥주를 팔던 그 집에, 어떤 가게가 들어설지 마을사람들은 궁금했다. 어느날 건물 외벽에 그림이 그려지고, 셔터문에 커다란 동물 캐릭터가 그려지고, 밤에 창가로 빛이 새나오는데, 가게 주인이 바뀐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 중 궁금증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사람들은 가게 유리창문에 다가와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어떤 주민은 가게문을 빼꼼히 열고 “여기 뭐하시는 곳이어요?”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다.


조 감독은 밤에도 테이블에 페인트로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본래 화가는 아니지만,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미지를 탁자 위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여 창가로 눈길을 주면, 그곳에 가게 안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사람들의 눈길과 마주쳐야 했다. 조 감독은 ‘스토킹’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는 창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불투명 비닐을 사와서 꼭꼭 막아버렸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가게문을 열고 “뭐하는 곳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스마일 우체국”이라고 응대해줬다. 그랬더니, 며칠 후 가게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 두세분들이 이곳을 가리키며 “저기 우체국이 들어온대-!” 하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할머니가 “우체국 언제 연대?” 하고 물었다. 조 감독은 그 소리를 듣고 “여기 ‘진짜 우체국’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웃음’을 전한다는 뜻에서 ‘스마일 우체국’이라고 가게 이름을 지은 것인데, 할머니들은 진짜 우체국이 들어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신 것이다. 


6개월 전 어느 날, 가게문을 열지 않았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눈에 손님으로 온 분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여기 가게 언제 여세요?” 하고 물었다. 이 말을 너무 자주 듣던 터라 조 감독은 이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자신에게 가게문을 빨리 열어라는 재촉을 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인상이 여유로워보이지 않는 아줌마가 또 가게를 언제 열 거냐고 물은 것이다.


조 감독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줌마에게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좀 더 있다가 열 건대요.”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혹시 커피 음료용 컵은 준비하셨나요?”

“아뇨, 아직 안했습니다!” 조 감독이 아픈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제가 도자기 공방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만들어 드리면 안될까요?” 아주머니는 명함을 내밀었다. 

디자인 감각이 나름 있다고 자부하는 조 감독은 아주머니의 명함이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싸구려 명함임을 알 수 있었다. 5000원 주면 2만장 찍어주는 명함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조 감독은 아주머니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저기 아래 골목에 저희 공방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상담해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문밖으로 나갔다. 


아주머니가 나가고 난 후, 조 감독은 속으로 핀잔을 주었다. ‘저 아주머니는 왜 저렇게 힘이 없어? 영업을 하려면 자신있게 해야지.’ 손에 받아든 명함에 약도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스마일 우체국’에서 머지 않은 곳에 공방이 있었다. 


조 감독은 그동안 공장에서 찍어낸 도자기가 아니라 공들인 도자기 컵을 주문할 요량으로 여러 가지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짬을 내서 아주머니의 공방을 한번 방문해보기로 했다. 자신의 가게에 영업하러온 것도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며칠 후.

조 감독은 아주머니의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인근에 있는 공방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동네 시장의 골목길을 따라 마트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옆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작은 간판이 눈에 띄였다. ‘파란색 공방’이라는 간판이 작게 붙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나무 대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안에 사람이 있는 듯했다. 약간 열린 틈 사이로 안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가게문을 열지 않은 ‘스마일 우체국’의 유리창에 눈을 갖다 붙이고 안을 들여다보는 이웃 주민들처럼, 조 감독도 조심스럼게 열린 틈에다가 눈을 갖다 댔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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