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과 장인(匠人)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대로변에 희귀한 장승이 서 있다. 툭 튀어나온 큰 눈과 주먹코, 뭐든지 집어삼킬 것 같은 큰 입, 드라큐라의 송곳니같은 날카로운 이빨, 흔히 볼 수 있는 장승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장승에게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이마와 턱, 얼굴을 둘러싼 전통문양이다. 또 오른쪽 귀에는 옆으로 뻗은 솟대에 새가 앉아있고, 왼쪽 귀에는 용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뱀의 혀를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 장승의 이름은 무엇일까.
몇장의 사진을 찍고 이 작품을 만드신 분을 만나보기로 했다. 바로 옆 공방으로 문을 열자 반갑게 맞아준다. 반바지 차림으로 작품을 구상 중인 조은 송지명 선생님이시다. 한 평생을 목공예에 전념해오셨단다. 선생님은 종이컵에 커피 한잔을 타주셨다. 작업실에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토르소 같은 여인의 몸통 조각품을 비롯해, 투우경기에 참가한 듯한 황소, 남근 머리 모양을 한 노인장승, 성모 마리아상, 어미 두꺼비와 그 등 위에 앉아있는 새끼 두꺼비 2마리가 조각된 탁자, 장미 조각품 등 많은 작품들이 보였다. 모두 선생님의 작품이란다.
공방 밖으로 나와 길 옆에 세워둔 장승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장승이 좀 특이한 것 같습니다."
"아, 이것은 귀면(鬼面)장승입니다. 옛날 귀면와당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귀면와당이란 귀신 얼굴의 문양이 새겨진 와당(瓦當)을 말한다. 조상들은 잡귀나 화를 막기 위해 와당에 주로 연꽃이나 들국화, 당초 문양을 새겨넣었는데, 귀면와당은 귀한 편이다.
"요 장승을 여기에 세워두었더니 사고가 없어졌어요.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사고가 났는데, 장승을 세운 뒤로 두달 동안 한번도 사고가 안났어요." 선생님은 장승에 대해 뭔가 악귀를 쫓는 기운이 있음을 암시했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벽사(酸邪) 역할을 하는 수호신으로서 신성시 되었다. 마을이나 사찰의 입구에 세워 모든 악과 질병 등 나쁜 기운을 물리치게 한 것이다. 장승을 세우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부정이 타지 않도록 했다. 재질에 따라 나무장승, 돌장승, 복합장승이 있고, 지방에 따라 법수, 벅수, 벅시, 장승, 장성(이상 영호남 남해안 지역), 장승, 수살이(이상 총청도), 돌미륵(평안도), 돌하르방(제주도) 등으로 불려졌다. 보통 남여 1쌍을 세우는데, 몸통에 '天下大將軍(천하대장군)', '地下 女將軍(지하여장군)' 등의 한자를 적었다. 이 이름도 세운이의 사상과 의도에 따라 동방청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북방흑제장군, 남방적제장군, 진서장군, 방어대장군 등 다양하다. 지역간 경계표시, 이정표 역할도 한 것이다.
"장승은 준봉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처음에 이걸 세우고 보니 저기 앞 준봉과 얼굴이 마주쳐서 오른쪽으로 약간 방향을 튼 것입니다." 장승은 높고 험한 봉우리를 피해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집도 큰 산봉우리와 마주치면 안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다.
"귀면장승의 오른쪽에 솟대는 왜 달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허허, 그냥 달았습니다." 그냥 웃으신다.
"귀면장승 머리 왼쪽에 튀어나온 것는 용 같은데요?"
"나뭇가지가 그럴 듯해서 달아보았습니다."
"귀면장승 머리 아래에도 장승얼굴 조각이 있는데, 저건 또 무엇입니까?"
"그건 장승 얼굴이 아니고 내가 그냥 양평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장인으로서 풍부한 상상력을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공방 옆 빈터에 눕혀져 있는 소나무 둥치에 눈길이 갔다.
"이 소나무도 장승을 만드는 모양입니다."
"어떤 분이 저기 세워둔 장승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작업 중입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던 그 귀면장승을 누군가 보고 주문을 한 모양이다. 조은 선생님은 "나무 모양이 똑 같지 않아서 아마도 똑 같게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요, 저기 옹이가 툭 튀어나온 부분은 최대한 살려서 만들 생각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나무를 찾기도 힘들거니와 수작업으로 하는 일이 똑 같을 수야 있겠는가. 느낌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한 쪽 나무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가지를 손으로 만져보신다. 자연 상태가 아닌, 누군가가 다듬다만 흔적이 보였다. 내가 그 부분을 가리키며 "저 부분은 누가 손댄 것 같은데요, 뭘 만드시려고 한 겁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이게 박달나무입니다. 나무가 단단해서 작품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요."하며 나무를 어루만지셨다. "사실은 어떤 친구가 장승공예를 배우겠다고 해서 받아주었는데, 이걸 가지고 이틀 작업하다가 그만 두고 갔어요. 요즘 친구들은 돈 안되고 힘든 일 안하려고 해서 걱정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장승 공예하는 기술이 끊기고 말 것 같아 안타깝죠."
선생님은 또 바로 옆에 쌓아둔 나무더미로 가서 썩어서 떨어지는 나무 껍집을 떼냈다. "이건 관솔입니다. 이 대로 놔두면 언젠가 썩지 않고 남는 게 있습니다. 그게 진짜 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얼마나 더 지나야 될 것 같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야 내가 살아있을 때 가능할지, 아니면 죽고나서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선생님과 나는 다시 공방으로 돌아와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의 말씀이다.
"한 20년 전에만 해도 목불(나무로 만든 불상) 하나만 만들어도 군수의 월급 정도를 벌었습니다. 그 때는 일본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와 쉴 틈이 없었지요. 요즘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우리한테 주문하지 않고 외국으로 갑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에다 주문해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외국 공예품에 대해 관세를 많이 붙여 수입을 줄이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문화재를 지킬 생각을 안해요. 답답합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장승이나 목불 공예를 배우겠다는 제자들도 나타나지 않아요, 걱정입니다."
선생님은 뜻 맞는 사람끼리 힘을 모아 전국 각지의 장승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승테마파크를 만들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