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고가 옷을 입지 않는 이유
20여년 전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간 한 교포의 이야기이다. 현재 호주 국적을 취득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호주 국민으로 어울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란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대학까지 다녀 결혼까지 하였으나 고국을 떠난지 20년이 지났고, 더욱이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단다. 호주에서 한국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웬지 신경이 쓰인단다. 몸과 마음이 한국에서 떠나 있지만 무의식 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뉴스는 충격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게다가 한번씩 터지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실 발사 뉴스 또한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있단다. 어쩌다 한번씩 친척을 만나러 한국에 오는데, 한국 국민들은 북한의 핵실험 등 전쟁 위협에 대해 전혀 게의치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외국에서 보는 북한 뉴스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어서 오히려 자신이 이방인같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이 못되는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의 호주보다 더 앞선 IT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단다. 호주의 일반 사무실에서도 인터넷을 잘 갖추지 못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대부분 가정에 컴퓨터를 설치해 인터넷을 즐기는 모습이라든가, 샐러리맨들도 핸드폰을 귀하게 여기던 시기에 한국에선 청소년들까지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단다. 한국에서 핸드폰이 급격히 확산된 배경은 통신사들의 과당 경쟁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요즘은 호주에서도 무료핸드폰이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어쨌거나 우리보다 기술문명의 속도는 늦는가 보다.
이번에는 한국산 의류로 눈을 돌려보자.
언제부턴가 한국산 의류는 품질면에서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을 주려고 샀는데, 귀국해서 보니 한국산 라벨이 붙어있더라는 얘기는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고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하도 중국산이 판을 쳐서 한국산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몇해전 한국에 사는 친척이 한국에서 잘 나가는 비싼 옷을 이 교포의 아들에게 선물로 사보냈다고 했다. 보기에 색깔도 괜찮고 질감도 좋아서 아들에게 딱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들은 한번도 이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친척이 너 입으라고 신경써서 사준 옷인데 왜 안 입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들이 말하기를 "창피해서 안 입는다"는 대답을 했단다.
당연히 '뭐가 창피하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아들은 "옷에 크게 적힌 영어가 엉터리라서 이 옷을 입고 나가면 놀림을 당할 것같아 입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한국산 고가 옷의 가치가 '콩글리시' 같은 잘못된 문장 때문에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장농 구석에 처박히고 만 셈이다. 한국 사람들에겐 영어가 문장으로서는 어법에 맞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영어를 주제로 한 '디자인의 하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영어를 크게 휘갈겨 쓴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사리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 가능한 일이고, 영어사용권 나라에서는 사정이 영 딴판인 것이다. 외국인이 된 교포2세에겐 '아직도 영어를 제대로 모르는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엉터리 영어'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의 자녀가 부모의 옛 고국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글 문장'이 담긴 티셔츠를 선물받았다고 해보자. 그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한국인 친구들이 그 이상한, 말도 안되는 한글을 읽어보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몇달 후 그 친척과 안부 전화를 나누게 됐단다.
친척이 물었단다. "지난번에 내가 사준 그 옷 어때! 한국에서 비싸게 산거야. 애 맘에 든데?"
"녜, 그래요. 그 옷 잘 입고 다니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단다. 옷에 새겨진 한국식 엉터리 영어 때문에 한번도 입지 않았다고 말해버린다면 친척은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엉터리 영어를 쓴 한국 제조업체에게는 화도 났을 것이다. 영어 하나 때문에 선물의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포는 결국 아무에게도 득될 게 없는 진실보다는 한번의 거짓말을 선택했던 것이다. 엉터리 영어 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